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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신속한 대응을 요청할 권리?

말인가 방군가

by 김세중

이 나라에 현재 법률이 1,600개가 좀 넘는다. 대부분이 중요한 법률이지만 개중엔 있으나마나한 법률도 더러 있다. 한 예를 들어볼까.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란 법률은 달랑 한 줄이다. 다음과 같다.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급휴일(有給休日)로 한다.


숱하게 많은 '날'이 있지만 다른 날들은 <~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없는데 왜 하필 근로자의 날만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있는지 의아하다.


최근 제정된 <112신고의 운영 및 처리에 관한 법률>도 그렇다. 이 법은 약칭이 <112신고처리법>인데 이 법이 없었을 때는 112 전화가 운용되지 않았나? 안 그렇지 않나. 그러니 왜 이 법률이 제정되었는지 궁금하다. 제정 이유야 그렇다 쳐도 실은 더 의아한 게 있다. 이 법률의 제4조는 다음과 같다.


제4조(국민의 권리와 의무) ① 누구든지 범죄나 각종 사건ㆍ사고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112신고를 이용하여 국가로부터 신속한 대응을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제4조 제1항에 '국가로부터 신속한 대응을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구절은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이게 말인가 방군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말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1) 국가에 신속한 대응을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의 신속한 대응을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3) 국가로부터 신속한 대응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1), (2), (3) 어느 것도 이상하지 않지만 제4조 제1항의 '국가로부터 신속한 대응을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는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나. 무슨 뜻인지야 감을 잡을 수 있지만 표현 자체는 횡설수설이나 진배없다. 이런 게 대한민국 법률이라니! 1950년대에 만들어진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이야 워낙 그 옛날 혼란스럽던 시기에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하지만 2024년에 제정된 법률의 문장이 이 따위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경찰청, 법제처, 국회는 도대체 무엇하는 곳인가.


112신고의 운영 및 처리에 관한 법률 | 국가법령정보센터 | 현행법령 > 법령명 (law.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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