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말과 말을 접속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법조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접속은 '또는'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또는' 앞의 말과 뒤의 말은 대등해야 한다. 예컨대 '사과 또는 배'라고는 할 수 있어도 '사과 또는 먹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사과'는 명사고 '먹다'는 동사기 때문에 '또는'으로 접속할 수 없다.
그런데 국정원법 제14조를 보자.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ㆍ청취하거나'라는 구절이 있다. '또는' 앞에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이라는 명사구가 나왔으므로 '또는' 뒤에는 역시 명사구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말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ㆍ청취하거나'라는 동사구가 나왔다. '사과 또는 먹다'가 말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 안 된다.
따라서 문법에 맞게 하려면 '또는' 앞의 말을 동사구로 바꾸어 주거나 아니면 '또는' 뒤의 말을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과 같은 명사구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후자의 방법을 취하면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의 녹음ㆍ청취를 하거나'가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과 대등한 명사구인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의 녹음ㆍ청취'가 오게 되고 이것들이 각각 '하거나'의 목적어가 된다.
위 법조문은 앞에서는 명사구를 쓰고 뒤에서는 동사구를 써서 접속이 어그러졌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자꾸만 되풀이해서 읽게 된다. 그런 끝에 입법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불필요한 수고를 해야 한다. 문법에 맞게 썼더라면 전혀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해야 한다. 법조문에서도 가끔 잘못된 접속을 발견하게 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조문을 작성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