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민의 지지와 호응이 필요하다
오전에 친구의 소개로 한 변호사를 만났다. 친구가 자기 사촌동생이 변호사라며 마침 그의 사무실이 우리 사무실과 가까우니 같이 가서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새로 나온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주자고 했다. 호의를 마다할 일이 아니어서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러나 따라나서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어느 법조인이 법조문의 문장과 단어가 문제투성이라는 내용의 책을 달가워하겠는가 싶어서다. 하지만 이왕 따라나섰으니 가서 만나보기로 했다.
마주 앉아서 변호사는 책을 계속해서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는 모습이 중립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싶어서 보는 듯도 했지만 무슨 흠은 없나 찾는 듯도 싶었다. 안 그렇겠나. 법이란 게 얼마나 어려운데 법에 문외한인 사람이 감히 법조문이 어떻다 저떻다 논하는가 싶지 않았겠나 말이다.
여기저기 넘겨가면서 그는 알듯 말듯한 말을 많이 했다. 법조문은 명확해야 한다는 말을 하다가도 법조문이 한글로 돼 있는 거에 자기는 반대한다는 말도 했다. 법조문에는 한자어를 써야 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러나 도대체 진정 그의 생각이 뭔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여기저기 훑어보더니 이 책 163쪽에 '조지하다'라는 괴상한 말이 형법 제136조에 들어 있다고 된 부분을 보더니 정말 형법에 이런 말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며 면담실을 바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풀이 죽은 듯 찾아보니까 정말 형법에 '조지하다'가 있다고 인정했다.
만일 내가 법조인이어도 비법조인이 법조문에 문제가 많다고 쓴 책을 받아 들면 수긍하고 찬동하기보다는 과연 법을 제대로 알고 썼겠나 싶을 거고 책 내용에 잘못이 있지 않을까 찾으려 들 것 같긴 하다. 법조인들은 법은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라는 의식에 젖어 살아왔다. 일반 국민은 알 수 없는 게 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만 무슨 뜻인지 알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법이 문법에 맞지 않고 사용된 단어가 해괴해도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높은 벽에 도전하기로 했다. 벽을 깨부수는 일은 일반 국민이 해야지 법조인 스스로는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늘 만난 변호사는 대한민국 법조인의 평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법은 법조인만을 위한 게 아니다. 법은 국민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그 법은 한국어 문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한국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문법에도 안 맞고 한국어 단어도 아닌 단어가 그득한 법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일반 국민의 지지와 호응이 필요하다. 절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