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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에 밀알이 되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

by 김세중

어제 드디어 책이 나왔다. 지난 2년 동안 들인 노력이 책자로 탄생했다. 사실 재작년에 민법의 오류를 지적한《민법의 비문》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민법은 모든 법률의 뿌리가 되는 중요한 법인데 그런 중요한 법이 낡고 오류투성이여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초판 1,000부를 찍었지만 팔린 건 몇 백 부 되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창고에는 300부가량 남아 있다.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우선《민법의 비문》이란 책의 제목부터 너무 어려웠다. 사실 ‘민법’만 해도 법을 아는 사람들이나 민법이 어떤 법인 줄 알지 일반 대중에게 대체로 민법은 생소할 것이다. 거기다 ‘비문’이라니! 비문(非文)은 문법학자들한테나 친숙하지 일반인들은 아마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문법에 맞지 않아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는 뜻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책의 제목부터 생소했으니 세상에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책의 제목뿐 아니라 《민법의 비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 독자들은 잘 알 수도 없었다. 책의 저자가 법학에 문외한인 언어학자가 아닌가. 이런저런 이유로 《민법의 비문》은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묻혀 버렸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절치부심 준비했다. 민법뿐 아니라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까지 범위를 넓혔다. 샅샅이 들여다보니 민법 말고 이런 법률도 언어적으로 오류투성이였다. 1950년대나 1960년대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도 알기 쉽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가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제목이 쉬울 뿐 아니라 제목에 담긴 뜻이 충격적이다. 지금이 2024년인데 대한민국의 법이 1950년대라니!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물론 처음부터 제목을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로 했던 건 아니다. 몇 차례 변경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기본법을 고발합니다》로 하려고 했다. 반감이 든다는 지적이 있어 《부끄러워요 대한민국 기본법》으로 할까도 생각해보았다. 역시 뭔가 마뜩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 마지막으로 정한 게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장이 저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며 국어학계와 법학계의 권위자들이 공감하고 동의한다는 것을 보이기로 했다. 책 뒤 표지에 남기심 전 국립국어원장, 이재후 김앤장 변호사, 법학박사이고 검사장을 지낸 3선 국회의원 장윤석 변호사, 문화관광부 차관을 지낸 법학박사 오지철 하트-하트재단 회장, 그리고 김지영 전 경향신문 편집인의 글을 실었다. 이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초고를 드렸다. 한결같이 저자의 주장과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을 피력해 주었다. 머리말 다음에도 여러 분의 추천사를 실었다. 우리나라 기본법에 오류가 많다는 것은 단순히 저자만의 생각이 아님을 이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증언해 주었다.


1950년대는 세상이 지금과 너무나 달랐다. 당시에 헌법은 있었지만 법률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법을 하나씩 만들어가던 시대였다. 법을 만들어야 하니 일본의 법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 부분은 베끼다시피 했다. 그런데 일본 법조문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숱한 오류가 들어갔다. 한국어의 조사를 잘못 쓰고 어미도 틀리고 자동사를 써야 하는데 타동사를 쓰거나 타동사를 써야 하는데 자동사를 쓰기도 했다. 법을 만드는 법률가들은 대충 뜻만 통하면 된다고 봤을 것이다. 입법 취지만 이해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날림으로 제정된 법률은 그저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들만 이용했지 일반인은 읽을 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1950년대는 우리 국민의 문맹률이 엄청나게 높았을 때다. 아마 거의 절반 가까이 문맹이었을 것이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광복 지후에 문맹률이 78%였는데 1960년에 27%로 감소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법률 조문을 읽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고 온 국민이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국가 기본법은 그런 시대에 어설프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지난 60~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런 오류투성이 기본법이 제정 당시의 모습에서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대로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법률가들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드물고 오히려 대부분은 오류가 있어도 손 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지금까지도 그렇게 오류가 많은 법조문이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란 말인가.


법은 온 국민에게 적용된다. 국민이 법을 알고 싶을 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법조문은 한국어로 돼 있고 한국어에는 한국어 문법이 있다. 법조문도 당연히 한국어 문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한국어 단어로 씌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법의 법조문은 한국어 문법을 지키지 않은 문장이 너무나 많고 한국어 단어 아닌, 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숱하게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현실에 법학자, 법조인들은 눈 감고 있고, 의당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해야 할 국어학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권익을 대변해야 할 입법권자인 국회의원들은 온통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 결국 국민이 피해를 입고 있다.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을 국민이 이해할 수 없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타파하는 일에 나서기로 했다. 그 출발이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이다. 부디 이 책이 널리 세상에 알려져 우리나라 기본법이 반듯하게 바로 서서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개정되기를 염원한다. 제22대 국회가 오는 4월 10일 선거를 거쳐 5월 30일 4년 임기가 시작된다. 그 4년 동안 오류투성이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이 바로잡히기를 염원한다. 대한민국의 기본법은 1950년대에서 탈피해야 한다. 2020년대에 맞는 법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너무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장정이 시작되었다.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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