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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낡은 법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by 김세중

법도 나이가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법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 만들어진 법이 있다. 국민투표법은 나이가 꽤 든 축에 속한다. 1962년 10월 12일에 제정되고 그날부터 시행된 법이다. 62년이 돼 간다. 그런데 오래된 법답게 요즘 만들어진 법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한자투성이다. 아래에 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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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온통 한자투성이면 요즘 세대는 읽기 어려우니 한글로 바꾸어서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원래 모습을 알고자 할 경우 <>을 누르면 위의 모습처럼 원래 제정, 공포된 대로 한자가 새카맣게 나온다.


문제는 한자냐 한글이냐가 아니다. 우선 6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법답게 낯선 단어가 한둘이 아니다.


제113조(사위등재ㆍ허위날인죄등) 사위의 방법으로 투표인명부에 등재되게 한 자나 제57조 제1항의 경우에 있어서 허위의 날인 또는 무인을 한 자는 6월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15조(투표위조 또는 증감죄) ①투표를 위조하거나 그 수를 증감한 자는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제113조 제1항에 나오는 '사위'는 '詐僞'이고 '증감한'은 '增減한'인데 1960년대에는 쓰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사전에만 있을 뿐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사위의 방법으로'는 '속임수로'라 하면 알기 쉽고 '증감한'은 '늘리거나 줄인'이라 하면 명확하다. 요컨대 '사위', '증감한'은 너무나 낡은 말이어서 오늘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제121조에서는 문법적으로 반듯하지 않은 표현이 들어 있다. 접속이 바르게 되지 않았다.


제121조(국민투표에 관한 범죄선동죄) 누구든지 벽보ㆍ신문ㆍ잡지를 이용하거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 장에 규정된 죄를 범할 것을 선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벽보ㆍ신문ㆍ잡지를 이용하거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라 했는데 동사인 '이용하거나'가 나왔으면 그 뒤에 동사가 나와야 마땅한데 '어떠한 방법으로든지'라는 명사구가 나왔다. 접속이 바르게 되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써야 옳다.


제121조(국민투표에 관한 범죄선동죄) 누구든지 벽보ㆍ신문ㆍ잡지를 이용하거나 기타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지 이 장에 규정된 죄를 범할 것을 선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는 명사구지만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지'는 동사구다. 동사구라야 앞의 동사구와 대등한 접속이 이루어진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문법에 맞게 쓰면 뜻이 더 쉽고 선명하게 이해된다.


1960년대 초에 부주의하게 작성된 법조문이 지금도 그대로다. 대충 씌어 있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되니 그냥 두고 있겠지만 옳지 않다. 법조문이 문법에 맞지 않다니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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