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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법조문 때문에 국격이 말이 아니다

by 김세중

며칠 전 나온 필자의 책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들고 힌 종편 대표이사를 지낸 전직 고위 관료 한 분을 만났다. 그분과의 인연은 20년이 넘는데 난 그렇게 두뇌가 명석한 분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성품이 겸손하고 대단히 성실하기까지 해 늘 감탄을 해왔다. 그런데 그분과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이건 좀 아닌데' 싶은 점을 느꼈다. 다음과 같았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는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대한민국의 기본법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숱하게 많고 사용된 단어 또한 국어에서 쓰지 않는 말이 적지 않음을 고발한 책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론에서 널리 다루어 주어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국회와 정부가 입법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요는 언론에서 우리나라 기본법의 법조문이 문제투성이임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한 언론사에서 다루면 경쟁하는 다른 언론사들은 기선을 뺏겼다 싶어 결코 다루지 않는다고 그분은 힘주어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걸 나도 안다.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가 다루는 내용이 뭔가.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을 고발하는 거 아닌가. 한 신문사에서 다룬다고 다른 신문사가 눈 감고 외면할 문제인가.


예를 들어 보자. 올림픽에서 어느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고 치자. 다른 신문사에서 보도했으니 안 다루나. 그런 일은 결단코 없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일제히 다룬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뤄도 그만 안 다뤄도 그만인 한가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온 국민에게 절실한 문제다. 국격이 달려 있다. 올림픽 경기 보도에 비유한 게 과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엉터리 법조문 때문에 수많은 법률 후속 세대가 공부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나홀로 소송을 하느라 법조문을 뒤적이는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법은 온 국민에게 적용된다. 그 법의 조문이 엉망진창인데 이를 알리고 바로잡자고 하는 게 왜 한가한 일인가. 타 신문이 다뤘다고 외면할 문제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가 바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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