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이상한 법조문

국세기본법에 이의 있다

by 김세중

국세기본법이라는 법이 있다. 국세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법이다. 이 법의 제17조는 다음과 같다.


제17조(조세감면의 사후관리)

①정부는 국세를 감면한 경우에 그 감면의 취지를 성취하거나 국가정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세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감면한 세액에 상당하는 자금 또는 자산의 운용 범위를 정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운용 범위를 벗어난 자금 또는 자산에 상당하는 감면세액은 세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감면을 취소하고 징수할 수 있다.


이 조문은 국세기본법이 1975년에 제정되었을 때는 다음과 같았다.


제17조 (조세감면의 사후관리)

①정부는 국세를 감면한 경우에 그 감면의 취지를 성취시키거나 국가정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세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감면한 세액에 상당하는 자금 또는 자산의 운용범위를 정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운용범위에 따르지 아니한 자금 또는 자산에 상당하는 감면세액은 세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감면을 취소하고 징수할 수 있다.


현재의 국세기본법 제17조는 제정되던 때에 비해 '성취시키거나'를 '성취하거나'로 바꾸고 '의하여'를 '따라'로 바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도의 취지와 내용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성취시키거나'가 워낙 문맥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이다 보니 '성취하거나'로 바꾸었고 한자어인 '의(依)하여'도 순우리말인 '따라'로 바꾼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문제는 따로 있다. 바뀐 현재의 법조문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느냐이다.


제17조는 제1항과 제2항이 있는데 이 중에서 제2항이 사실은 핵심 같아 보인다. 제1항은 국세는 감면할 수 있음을 규정한 것이고 제2항은 경우에 따라 제1항의 감면 결정을 취소하고 국세를 징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제1항 문장 자체가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가? 제17조 제1항을 읽는 사람이 모두 쉽게 제1항의 의미를 잘 이해하나?


필자는 제1항을 읽고 또 읽고 계속 되풀이해 읽었다. 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 후에서야 어렴풋이 입법 취지를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1항은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왜 그런가? 제1항에서 '감면한'은 '감면할'이라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감면하는'이라고 해도 괜찮다. 그러나 '감면한'은 도무지 맞지 않다. 제1항은 국세를 감면할 수 있고 감면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제2항은 감면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1항에서는 '국세를 감면 경우에'이 아니라 '국세를 감면 경우에' 또는 '국세를 감면하는 경우에'라고 할 때 훨씬 이해하기 쉽다. '감면한'이라고 하면 그 범위까지 동시에 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지만 '감면할' 또는 '감면하는'이라고 하면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제1항의 문제는 동사의 시제어미뿐이 아니다. '그 감면의 취지를 성취하거나'도 표현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 감면의 취지를 만족하거나' 또는 '그 감면의 취지에 맞거나', '그 감면의 취지에 부합하거나', '그 감면의 취지를 충족하거나' 따위가 훨씬 입법 취지에 가까워 보인다. '감면의 취지를 성취하거나'는 무슨 뜻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내 지적이 옳다면 국세기본법 제17조 제1항은 개정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안 그래도 세법은 어렵고 복잡하기 짝이 없다. 1975년에 만들어진 조항이 아직 그대로다. 법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있나. 아니면 국민을 골탕 먹이기 위해 있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용히 치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