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첫날 안동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주진교에서부터 삼촌 사시는 천전리 가래골까지는 재보지 않았지만 5km 정도 되지 싶다. 그까이꺼 5km 정도야 우습다. 비록 좀 경사진 곳이긴 해도 말이다. 2시간 정도면 되리라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500m쯤 걸었을 때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옆을 지나친 뒤 멈춰 서는 게 아닌가. 조수석 문으로 얼굴을 내민 이는 사촌동생의 아내였다. 익히 아는... 그들도 시골 계신 아버지께로 가는 중이었고 나도 삼촌한테 가는 길이다. 사촌제수씨가 내려서 뒷좌석으로 옮겨 타고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뒤에 앉아 있던 어린 두 5촌 조카애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중1 남자애와 초2 여자애다. 시골 할아버지한테 간다고 잔뜩 들떠 있었다. 몇 시간째 차 안에서 갇혀 있었지만...
덕분에 쉽게 가래골 삼촌 계신 곳으로 왔다. 사촌동생이 차에서 짐을 꺼내고 있는 동안 나는 집 뒤 산등성이의 부모님 묘로 올라갔다. 몇 년만인가.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그곳에 잠들어 계신다. 한 줄로 쭉 산소가 늘어서 있는데 끝까지 가보았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조심조심 내려왔다.
집으로 내려오니 저녁 상이 차려져 있었다. 사촌제수씨가 사가지고 온 안동 특산미 백진주쌀로 밥을 했다. 고기도 굽고... 삼촌은 늘 혼자 지내시다 서울에서 큰아들 가족이 내려온 데다 조카인 나까지 왔으니 기분이 꽤나 좋으신 듯했다. 저녁을 먹고 삼촌 거처하시는 곳으로 옮겨가 커피를 마셨다. 텔레비전을 보며 옛날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 시골에서 연합뉴스TV를 시청하고 계셨다.
사실 가래골 삼촌 사시는 곳은 통신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매우 신기한 것이 스마트폰의 인터넷 연결이 됐다 안 됐다 한다. 몇 미터만 움직여도 안 되다가 또 조금 움직이면 된다. 되더라도 속도가 매우 느리다. 사진은 전송이 안 되는데 글자 몇 글자는 쉽게 전송이 된다. 이러니 통신이 된다고도 할 수 없고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다. 되는 듯 마는 듯하다. 오로지 전화만 잘 된다.
올해 78세인 삼촌은 오래 전에 갑자기 숙모가 돌아가시고 이곳에 홀로 와 사신 지가 10여 년 된다. 2015년에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에도 출연하셨다. 이승윤과 찍은 사진이 방 안에 걸려 있었다. 삼촌이 이곳에 정주하시기 전에 이미 정자인 응봉정(鷹峰亭)은 지어져 있었다. 응봉정 바로 옆에 움막으로 지은 집은 문패가 '응봉노래방'이다. 노래방 설비를 대구에 가서 사와서 설치해뒀다고 했다. 삼촌이 거처하시는 곳은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날 사촌동생의 가솔들은 응봉노래방에서, 나는 응봉정에서, 삼촌은 늘 지내시는 집에서 잤다. 난 혼자서 응봉정에서 잤는데 벽과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수많은 벌레들과 함께 잤다. 퇴치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모르는 채 같이 자는 수밖에.
아침을 먹고 나서 이번 안동 여행의 목표인 예던길 순례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자면 안동호를 건너 도산면 서부리로 가야 한다. 서부리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삼촌께 여쭈니 전화만 하면 배가 온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이었다. 삼촌이 전화를 거니 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과연 얼마 후 통통 소리가 나며 모터보트가 왔다.
10여 년 전 천전리 올 때는 으레 서부리에서 배를 타고 왔다. 그 배는 하루에 세 번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이 수십 명 탔다. 이제는 그렇게 큰 배를 운행할 일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는다 했다. 전화해서 부르면 언제든 온단다. 정기편에서 부정기편으로 바뀌었다.
삼촌은 나를 보내면서 저녁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늘 혼자 지내시니 내가 다시 와서 하룻밤 또 묵으면 좋으시겠지... 심심하지도 않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섬이나 다를 바 없는 그 산골에 어떤 방법으로 올 수 있단 말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네' 하고 답할 수 없었다. 천전리 가래골을 떠난 모터보트는 배 부리는 사람과 나만 태운 채 불과 10분도 채 안 걸려 도산면 서부리에 닿았다. 배삯도 받지 않았다. 무료다. 이런 좋은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안동시가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