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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06. 2024

안동을 찾아서 (1)

연휴 첫날 안동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내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몇 해만에 안동을 찾았다. 2박 3일 일정으로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어린이날이 일요일이라 월요일이 대체휴일, 그래서 사흘 연휴다. 이미 기차표는 완전 매진됐다는 걸 알았기에 버스로 가려고 강남고속터미널로 갔다. 7시 20분발 안동행 고속버스를 타면 되겠다 하는 계산으로...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7시 20분은커녕 안동행은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다 매진이었다. 아뿔싸! 급히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안동 가까운 곳으로 일단 간 다음 거기선 어찌어찌 안동까지 가겠지 해서... 그런데 놀랍다. 영주, 예천 심지어 대구까지 좌석은 매진이다. 급기야 좀 더 먼 상주를 찍어 보니 마침 7시 50분발 한 자리가 있길래 냉큼 샀다. 일단 상주까지는 갈 수 있게 됐다.



좌석은 만석이다


7시 50분 상주행 고속버스는 참 힘든 여정을 시작했다. 고속도로가 꽉 막혔기 때문이었다. 버스전용차로에 끼어든 승용차는 또 뭐냐. 전용차로가 제 구실을 못한다. 사흘 연휴를 맞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니 고속도로가 몸살을 하는 건 당연하다. 도중에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드디어 상주에 도착했는데 3시간 46분이 지나 있었다. 거의 네 시간 걸렸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 늦었다.


상주터미널에 내려서 당장 시간표를 보았다. 과연 안동 가는 게 있을까. 안동 가는 버스가 없으면 문경, 예천, 의성 가는 버스라도 타고 거기서 안동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니까.



그런데 상주터미널에서는 대부분 점촌(문경) 가는 버스였고 예천이나 의성 가는 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안동에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1시 27분 차였다. 그걸 타는 게 최선이다 싶은 판단이 섰고 주저 없이 표 샀다. 남는 1시간 반 가량은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점심을 먹으면 된다. 딱이었다.


상주터미널을 나와 정처 없이 거리 구경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대낮은 상주 시내는 조용했다.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음식점이 많았고 경관이 비슷했다. 다만 시 치고는 조용했다. 사람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중국집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걷기를 20여 분, 좀처럼 중국집이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짬뽕명가'란 집이 나타났다. 맵고 얼큰한 게 싫어 짬뽕 대신에 볶음밥을 주문했다.



짬뽕명가에서 먹은 볶음밥


점심을 먹고 나서 1시 27분발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들어갔다. 터미널 건물은 외양은 어마어마했는데 정작 안으로 들어가니 어둡고 우중충했다. 이용객이 적어서겠지... 상주 출발이 아니고 아마 김천쯤에서 오는 버스인 듯 예정 시간을 좀 넘겨 터미널에 들어왔다. 안동 가는 시외버스는 한산했다.


상주터미널의 외양은 크고 현대식
이리도 조용할 수가!


버스는 상주를 떠나 점촌에서 한 번 서고 예천에 서고 경북도청에 들른 뒤 안동터미널에 이르렀다. 안동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말이다. 준비 없이 집을 나섰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가까스로 안동에 오긴 왔다.



안동에 온 게 다가 아니다. 최종 목적지는 조상 대대로 살았고 지금은 둘째 삼촌이 계신 예안면 천전리 산골이다. 그곳에 가기가 쉽지 않다. 워낙 오지라서... 안동에서 예안(정산) 가는 버스를 타고 주진교에서 내린 뒤 주진교에서 걸어서 천전리 산골로 들어갈 요량이었다. 안동터미널에서 예안 가는 510번 버스가 있는데 3시 50분에 안동터미널을 출발한다고 돼 있었다. 그걸 타야 한다. 시간은 40분 정도 남았다.


마침 근처에 산뜻하게 보이는 관광안내소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1층에는 여직원 두 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2층에 화장실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용변을 보고 나서 넓은 휴게 공간이 있어 가보니 쾌적한 시설인데 텅 비어 있고 웬 중년 남자가 혼자 창문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를 보고 안동사투리로 말을 건네길래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는 왜 거기 앉아 있는가. 직원인가.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 관광안내소 2층 휴게실에 좀 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버스가 과연 제시간에 올까. 궁금했다. 그러나 잠시 뒤 놀랍게도 칼같이 510번 버스가 들어섰다. 냉큼 올라탔다. 그 버스에 탄 승객은 나뿐이었다. 시내를 지나 와룡을 거쳐 점점 산골로 들어갔다. 주진교를 건너자마자 내렸다.


510번 버스는 텅텅 비었다.
안동을 찾는 외국인이 참 많다.
안동 전통 축제와 프랑스 악단의 안동 공연이 나란히 걸려 있다.


주진교 건너서 나를 내려준 버스가 정산으로 향하고 있다.
안동호
주진교


주진교에서부터 삼촌 사시는 천전리 가래골까지는 재보지 않았지만 5km 정도 되지 싶다. 그까이꺼 5km 정도야 우습다. 비록 좀 경사진 곳이긴 해도 말이다. 2시간 정도면 되리라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500m쯤 걸었을 때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옆을 지나친 뒤 멈춰 서는 게 아닌가. 조수석 문으로 얼굴을 내민 이는 사촌동생의 아내였다. 익히 아는... 그들도 시골 계신 아버지께로 가는 중이었고 나도 삼촌한테 가는 길이다. 사촌제수씨가 내려서 뒷좌석으로 옮겨 타고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뒤에 앉아 있던 어린 두 5촌 조카애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중1 남자애와 초2 여자애다. 시골 할아버지한테 간다고 잔뜩 들떠 있었다. 몇 시간째 차 안에서 갇혀 있었지만...


덕분에 쉽게 가래골 삼촌 계신 곳으로 왔다. 사촌동생이 차에서 짐을 꺼내고 있는 동안 나는 집 뒤 산등성이의 부모님 묘로 올라갔다. 몇 년만인가.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그곳에 잠들어 계신다. 한 줄로 쭉 산소가 늘어서 있는데 끝까지 가보았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조심조심 내려왔다. 


집으로 내려오니 저녁 상이 차려져 있었다. 사촌제수씨가 사가지고 온 안동 특산미 백진주쌀로 밥을 했다. 고기도 굽고... 삼촌은 늘 혼자 지내시다 서울에서 큰아들 가족이 내려온 데다 조카인 나까지 왔으니 기분이 꽤나 좋으신 듯했다. 저녁을 먹고 삼촌 거처하시는 곳으로 옮겨가 커피를 마셨다. 텔레비전을 보며 옛날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 시골에서 연합뉴스TV를 시청하고 계셨다.


사실 가래골 삼촌 사시는 곳은 통신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매우 신기한 것이 스마트폰의 인터넷 연결이 됐다 안 됐다 한다. 몇 미터만 움직여도 안 되다가 또 조금 움직이면 된다. 되더라도 속도가 매우 느리다. 사진은 전송이 안 되는데 글자 몇 글자는 쉽게 전송이 된다. 이러니 통신이 된다고도 할 수 없고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다. 되는 듯 마는 듯하다. 오로지 전화만 잘 된다. 


올해 78세인 삼촌은 오래 전에 갑자기 숙모가 돌아가시고 이곳에 홀로 와 사신 지가 10여 년 된다. 2015년에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에도 출연하셨다. 이승윤과 찍은 사진이 방 안에 걸려 있었다. 삼촌이 이곳에 정주하시기 전에 이미 정자인 응봉정(鷹峰亭)은 지어져 있었다. 응봉정 바로 옆에 움막으로 지은 집은 문패가 '응봉노래방'이다. 노래방 설비를 대구에 가서 사와서 설치해뒀다고 했다. 삼촌이 거처하시는 곳은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날 사촌동생의 가솔들은 응봉노래방에서, 나는 응봉정에서, 삼촌은 늘 지내시는 집에서 잤다. 난 혼자서 응봉정에서 잤는데 벽과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수많은 벌레들과 함께 잤다. 퇴치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모르는 채 같이 자는 수밖에.


안동호가 보이는 솔밭
안동호
조상 묘
선대 묘가 모여 있다.
조모님 추모비
안동호
안동호는 잔잔하다.
늪이 우거졌다.
삼촌 혼자 이렇게 사신다.
삼촌과 그 손주들(나의 5촌 조카)
나를 도산면 서부리로 데려다줄 보트가 들어오고 있다.
삼촌과 사촌 내외 그리고 5촌 조카들
주민을 실어나르는 배
도산면 서부리 선착장


아침을 먹고 나서 이번 안동 여행의 목표인 예던길 순례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자면 안동호를 건너 도산면 서부리로 가야 한다. 서부리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삼촌께 여쭈니 전화만 하면 배가 온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이었다. 삼촌이 전화를 거니 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과연 얼마 후 통통 소리가 나며 모터보트가 왔다.


10여 년 전 천전리 올 때는 으레 서부리에서 배를 타고 왔다. 그 배는 하루에 세 번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이 수십 명 탔다. 이제는 그렇게 큰 배를 운행할 일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는다 했다. 전화해서 부르면 언제든 온단다. 정기편에서 부정기편으로 바뀌었다.


삼촌은 나를 보내면서 저녁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늘 혼자 지내시니 내가 다시 와서 하룻밤 또 묵으면 좋으시겠지... 심심하지도 않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섬이나 다를 바 없는 그 산골에 어떤 방법으로 올 수 있단 말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네' 하고 답할 수 없었다. 천전리 가래골을 떠난 모터보트는 배 부리는 사람과 나만 태운 채 불과 10분도 채 안 걸려 도산면 서부리에 닿았다. 배삯도 받지 않았다. 무료다. 이런 좋은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안동시가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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