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사용면에서 잡탕이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은 약칭 문화유산법으로 과거의 문화재보호법이 이름을 바꾼 것이다. 문화재라는 말 자체가 이제 법령에서 사라졌다. 문화재 대신 문화유산 또는 유산이 쓰이게 된다. 과연 국민들 입에 붙은 문화재라는 말이 쉬 사라질까 의문이 든다. 아마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문화재의 재(財)가 '재화'란 뜻이 강하니 이를 피해 문화유산이란 말을 쓰기로 한 듯한데 보통 일이 아니어 보인다. 어쨌든 문화재 관련 법령은 죄다 바뀌었고 문화재란 말 대신 문화유산 또는 유산이 쓰이게 됐다. 그런데 법에서 문화재만 문화유산으로 바꾸면 족한가. 문화유산 관련 법령에 다른 문제는 없을까. 문화유산법 제30조를 보자.
'효력을 발생한다'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문화재보호법이 1962년 2월 제정될 때부터 들어 있던 표현이 62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황당하다. 누구도 '화재를 발생한다', '사건을 발생한다'라고 하지 않는다. '화재가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효력'만 '효력을 발생한다'인가. 이 뿌리 깊은 습관은 1948년에 제정된 헌법에서 비롯된다.
제헌헌법 제40조에 '효력을 발생한다'가 들어갔고 헌법이 아홉 차례 개정되는 동안 이 '효력을 발생한다'는 단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헌법 제53조 제7항에는 '효력을 발생한다'이다. 하도 입에 배다 보니 형사소송법을 비롯해 여러 다른 법률에도 이 '효력을 발생한다'가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1962년 1월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효력을 발생한다'가 쓰였고 2024년 5월 17일부터 시행되는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의 제30조도 여전히 '효력을 발생한다'이다. 제헌헌법에 들어간 오류가 76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남아 있다. 참 대단하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남아 있는 옛날 어투 표현은 더 있다. '해하다'라는 말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해할', '해한' 등이 곳곳에 들어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해하다'라는 말을 쓰나. 왜 '해치다'라고 하지 못하나. 이런 케케묵은 말은 고치지 않고 놓아 두면서 한편으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는 '문화유산디지털콘텐츠'니 '매뉴얼'과 같은 외래어가 거침없이 쓰이고 있다. 또한 시세에 영합하려는지 '문화유산돌봄사업', '문화유산돌봄센터' 같은 말이 조문에 쓰이고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돌봄'이란 말이 아예 없다. 도대체 어휘 사용이 뒤죽박죽이다. 낡디낡은 말이 버젓이 남아 있는가 하면 최신 경향의 신어도 마구 쓰인다. 한마디로 어휘 사용면에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은 잡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래도 되는지 몹시 의문스럽다.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