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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17. 2024

'문화재'는 완전히 없어져야 할까

'문화재'와 '국가유산'은 동치가 아니다

오늘부터 법령에서 문화재란 말이 사라졌다. 문화재 대신에 국가유산이 쓰이게 됐다. 문화재청은 이제 없고 국가유산청이 있을 뿐이다. 필자에게는 사실 문화재관리국이란 말이 더 익숙한데 1997년 1월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으로 승격했고 27년이 지난 이제 그 문화재청마저 사라지고 국가유산청이라 불리게 됐다. 


어제 아는 신문기자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문화재라는 말이 법령에서 사라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하고 그가 말을 꺼냈다. 우리말에 일본어 잔재가 많이 있는데 이를 청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다. 아니! 질문이 그렇게 포괄적이면 어떻게 답하나? 우리말에 일본어에서 들어온 한자어를 죄다 몰아내면 쓸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되나. 일본어에서 온 말이라도 쓰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서 만든 말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원론적인 얘기를 말했더니 잘 알았다는 듯이 서둘러 그는 통화를 마쳤다. 그는 애초에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내게 듣고 싶었던 게 아니고 뻔한 말을 그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오늘 아침 신문에 내가 기사 맨 끝에 언급이 돼 있었다.


문화재라는 말을 국가유산이나 문화유산, 유산 등으로 대체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문화재국가유산은 의미상 완전히 동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만 각각의 고유한 영역도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문화재는 개별적인 물체를 가리킬 수 있는 데 반해 국가유산은 추상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쪽이어서 그런 뜻은 좀체 갖지 못한다. 당장 공항에서 국보나 보물 같은 물건을 반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업무를 '문화재 감정'이라고 해 왔는데 이를 '국가유산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백자는 보통 물건이 아니야. 문화재야." 하고 말할 순 있어도 "저 백자는 보통 물건이 아니야. 국가유산이야." 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화재청국가유산청으로 바꾸고 무형문화재무형유산으로 바꾸기로 한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더구나 법까지 통과되고 오늘부터 시행됐다. 그런 판에 이런 제도 변화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찬성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상 언어생활의 모든 경우에 문화재란 말을 쓰지 말자는 데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문화재라는 말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령 속의 문화재는 다 변경했는지는 몰라도 국가가 세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과 이름에는 여전히 문화재가 쓰이고 있다. 문화재보존과학과, 문화재관리학과가 그것이다. 이들 학과 이름도 앞으로 바뀔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문화재 수리, 문화재 감정 같은 말은 아무래도 문화유산 수리, 문화유산 감정 같은 말로 바꾸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진다. 처음이라 어색한 건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어색할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문화재국가유산으로 바꾸는 큰 걸음을 내딛었으니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문화재라는 말을 완전히 죽이려 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과 이름에는 '문화재'가 여전히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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