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일본어 잔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있다. 이 법은 역사가 오래됐다. 원래 노동조합법은 1953년 3월 8일에 제정되었다. 1958년에 제정된 민법보다는 5년 빠르고 1953년 9월 18일 제정된 형법보다도 6개월 이상 빠르다. 노동조합법이 얼마나 오래 된 법인지 알 수 있다. 그 긴 역사만큽이나 개정도 자주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늘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1953년 제정 당시의 낡은 어투는 거의 사라지고 시대에 맞게 다듬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깔끔하게 고쳐지지 않고 여전히 구 시대의 낡은 어투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증거가 제90조를 비롯한 여러 조에 남아 있다. 당장 제90조와 제91조를 비교해 보자.
제90조에는 '규정에 위반한 자는'이라 되어 있는 데 반해 제91조에서는 '규정을 위반한 자'가 아닌가. 왜 같은 '위반한'인데 제90조에서는 '규정에 위반한'이고 제91조에서는 '규정을 위반한'인가. 왜 그래야 하는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규정에 위반한'이 일본어투이고 '규정을 위반한'이 우리말이다.
법조문에 일본어 흔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70년이 넘도록 수도 없이 법이 개정되었지만 일부 조항에서는 여전히 '규정에 위반한'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정녕 이토록 말에 무관심한가. 일본어 잔재인 '규정에 위반한'이 노동법뿐 아니라 민법, 형법 등의 조문에 요지부동 남아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법조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금까지도 법조문 곳곳에 말이 안 되는 '규정에 위반한'이 남아 있단 말인가. 좀 더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