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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19. 2024

새재고개를 넘다

천마지맥을 찾아서

일전에 서울 근교의 호젓한 산길을 걸었다. 의정부와 남양주의 경계에 있는 도정산, 인천 영종도의 백운산은 야트막하지만 제법 숲이 울창한 좋은 산행코스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도정산은 구리-포천고속도로, 백운산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가까이에 지나고 있어 차량 소음이 여간 심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차 소음이 없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근처에 고속도로가 없는 곳을 탐색해 보니 운길산, 예봉산 일대가 그런 곳이었다.


용산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덕소역 다음인 도심역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새재고개를 넘은 뒤 운길산역까지 갈 요량이었다. 도심역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아뿔싸! 역 건너에 마트가 있었지만 가다가 또 있겠지 하고 그냥 간 게 화근이었다. 물이며 빵이며 그 무엇도 없이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있겠거니 했던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간혹 카페가 있긴 했어도 그런 데서 물과 간식을 살 수 있나? 대책 없이 걸었다.


부근에 고속도로는 없었지만 대신 좁은 길을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들이 신경 쓰였다. 차가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데까지 가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성균관대의 남양주 교육 학술림 부근에 이르자 비로소 차량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 후로는 울창한 숲속으로 이따금 등산객만 마주칠 뿐이었다. 단, 반갑지 않은 무엇을 만났으니 그 깊은 산속에 산악자전거가 맹렬히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러나 한 사람뿐이어서 다행이었다.


드디어 새재고개에 이르렀다. 그곳은 네거리였다. 예봉산, 도곡리, 갑산, 시우리에서 온 길이 그곳에서 만났다. 벤치도 몇 놓여 있었고 둥근 돌 원판에 네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천마지맥의 한 지점이 바로 새재고개인 것이다. 예봉산, 갑산 방향을 피해 시우리쪽으로 향했다. 깊은 산중이었지만 길이 꽤나 넓었다. 차도 지날 수 있을 만큼... 얼마 가지 않아 샘물이 콸콸 솟아나고 있었고 운동기구들이 있었다. 작은 정자도 있었고... 그리고 갈래길이 나 있었다.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넓은 길로 계속 가다가 스마트폰으로 램블러앱을 열어 보았는데 넓은 길로 계속 가면 운길산, 예봉산 방향이었다. 그건 원래 의도한 길이 아니어서 되돌아와 갈림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시우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매우 좁았다. 이정표도 없었다. 사람은 물론 없었다. 깊고 깊은 산림 속 오솔길을 홀로 걸어 내려갔다. 산이 여간 깊지 않다.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어디선가 나고 있었다. 얼마나 걸어 내려왔는지 모른다. 드디어 내를 건너니 비로소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다. 험지를 벗어난 것이다. 그 후로는 띄엄띄엄 민가가 있었다. 시우리 마을이었다. 시우리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왕자, 신하들과 강무[무예를 강습함]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오지처럼 느껴지는데 600년 전에는 얼마나 깊고 깊은 산골이었을까. 그런데 임금이 이곳까지 왔다니!


드디어 시우리 넓은 도로에 이르렀다. 고래산로인데 노선버스가 다니는 길이다. 승용차도 제법 다니고 있었다. 도로 갓길을 걷다가 앱으로 운길산역까지의 거리를 확인해 보니 6.8km나 되었다. 상당한 거리다. 하지만 걷는 수밖에... 물론 하염없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보면 버스가 올 수도 있겠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거 아닌가. 이왕 걸으러 나왔으니 걸어간다. 드디어 북한강과 나란히 나 있는 북한강로에 이르렀다. 문명세계로 나온 느낌이었다. 배가 고파 마침 눈에 띈 국숫집에 들어갔다. 대기줄을 설 때 번호표를 받지 않고 기계에다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게 돼 있었다. 거기 번호를 넣고 인원 수 '1'을 넣으니 바로 호출이 왔다. 이럴 땐 혼자 오는 사람이 유리하다.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그득한 국수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곳에서 운길산역까지는 2km가 채 되지 않았다. 물의 정원이 가까이 있어 그곳 주차장이 부산했다. 걷다 보니 운길산역이었고 이렇게 다섯 시간여에 걸친 도보여행은 끝났다. 천마지맥의 한 지점인 새재고개를 넘어 보았다. 시우리에서 운길산역까지가 지루하니 다음에는 새재고개에서 시우리로 내려오지 않고 운길산으로 올라가 능선을 타고 수종사를 거쳐서 운길산역으로 내려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냠양주는 대단히 넓고 와부읍과 조안면에 걸쳐 있는 천마지맥은 원시의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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