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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24. 2024

뜻만 통하면 그만일까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란 법이 있다. 1976년에 제정된 법이다. 이 법 제4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제4조(주산지의 지정 및 해제 등) ① 시ㆍ도지사는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 또는 수급(需給)을 조절하기 위하여 생산 및 출하를 촉진 또는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주요 농수산물의 생산지역이나 생산수면(이하 “주산지”라 한다)을 지정하고 그 주산지에서 주요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자에 대하여 생산자금의 융자 및 기술지도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개정 2017. 3. 21.>


여기서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 또는 수급(需給)을 조절하기 위하여'는 개운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만일 이 말이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를 조절하기 위하여'와 '농수산물의 수급을 조절하기 위하여'를 '또는'으로 연결한 말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를 조절하기 위하여'는 말이 안 된다.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가 의도한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어떻게 썼어야 했나?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 또는 수급 조절을 위하여'라고 하거나 아니면 '농산물의 경쟁력을 제고하거나 수급을 조절하기 위하여'라고 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고 문법적으로 온전하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가 너무 까탈스러운 걸까. '농수산물의 경쟁력 제고 또는 수급(需給)을 조절하기 위하여'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이 없으므로 그냥 넘어가도 좋은 걸까.


문법에서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명사와 명사를 접속하든지 동사와 동사를 접속해야지 명사와 동사를 접속할 수는 없다. 명사구와 명사구를 접속하든지 동사구와 동사구를 접속해야지 명사구와 동사구를 접속할 수는 없다. 법조문에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뜨악하다. 문법에 벗어나더라도 뜻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 없으므로 눈 감고 지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문법을 지키지 않은 표현은 눈에 거슬린다. 법조문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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