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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29. 2024

제22대 국회에 기대한다

오류를 왜 가만 두고 있나

제21대 국회의 임기가 오늘로 만료된다. 2020년 5월 30일에 임기를 개시한 제21대 국회가 이제 끝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제22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다. 당선된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149명이 제21대 국회의원이다. 거의 절반이 제21대 국회의원인 것이다. 나머지 151명 중에서 초선이 132명이고 19명은 제20대 이전에 국회의원을 지내고 이번에 복귀하는 이들이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인가. 누구나 잘 알지만 입법 기능이다. 국회를 입법부라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정부가 법안을 만들든 의원이 만들든 국회를 통과해야만 법이 제정 또는 개정된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기능 중에 입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국회가 예산안 심의도 하고 인사청문회도 하고 의원 외교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입법은 그런 것들을 압도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를 수립했다. 그해 5월 10일에 총선거를 실시했고 이로써 성립된 국회에서 7월 17일 일 헌법정부조직법을 제정했다. 그후 76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법률이 제정, 개정됐다. 현재 우리나라 법률은 1,600여 개이다. 이 모든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됐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법치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법치국가임을 자랑할 수 있는가? 필자는 이에 대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숱한 예가 있지만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민법 

제118조(대리권의 범위) 권한을 정하지 아니한 대리인은 다음 각호의 행위만을 할 수 있다.

1. 보존행위

2. 대리의 목적인 물건이나 권리의 성질을 변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이용 또는 개량하는 행위


'물건이나 권리의 성질을 변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가 무슨 말인가?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다. 한참 읽은 후에서야 '물건이나 권리의 성질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혹은 '물건이나 권리의 성질이 변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라는 뜻을 감 잡을 수 있다. 원문이 틀렸다. 


형사소송법

제306조(공판절차의 정지)

④피고사건에 대하여 무죄, 면소, 형의 면제 또는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 제1항, 제2항의 사유있는 경우에도 피고인의 출정없이 재판할 수 있다.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때에는'이어야 하지 않는가. 이쯤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오류 아닌가.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피해자등의 진술권) 

2. 피해자등 이미 당해 사건에 관하여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피해자등 이미 당해 사건에 관하여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이라니 '피해자등'에 아무 조사가 없다. '피해자등'라야 하는데 주격조사 ''가 빠져 있는 것이다. 1987년 11월에 신설된 조문인데 참 무성의하게 법조문을 만들었다. 믿기 어렵다.


형법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황당하다. '위난을 피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자'를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로 잘못 썼다. 너무나 빤한 어이없는 오류가 바로잡히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이게 우리나라 6법의 현주소다.


법은 온 국민에게 적용되고 법이 없이는 국가가 운영되지 못한다. 그런데 법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다. 그러나 늘 법을 사용하는 법률가들은 말에 대해 관심이 없고 일반 국민은 법조문을 읽을 일이 없으니 이런 줄을 모른다. 이런 가운데 법률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신진 학도들이 끙끙 앓고 있다. 뭔가 법조문이 이상한데 누구도 법조문이 잘못 됐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서만 속앓이한다. 그리고 이들도 정작 법률가가 되면 공부할 때 겪었던 당혹감과 낭패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나도 이젠 법조인'이라는 긍지에 가득차...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형법이 1953년, 형사소송법이 1954년, 민법이 1958년에 제정됐다. 거의 70년 가깝다. 국회의원들은 정쟁에만 매몰돼 법조문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줄을 모른다. 알아도 '그까짓거' 할 것이다. 제22대 국회에 기대를 건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법조문의 오류는 국민이 바로잡을 수 있다. 대한민국 법언어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오류를 왜 가만 두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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