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방치할 것인가
대한민국에 법률이 1,600개가 넘지만 그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법률이 몇 있다. 이른바 6법이라 하는 것인데 헌법과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이 그것이다. 이들은 기본법으로서 법과대학과 법률전문대학원에서 특히 비중 있는 과목이다. 다른 수많은 법률은 각자가 알아서 그 법을 읽고 이해하면 되지만 이들 기본법은 교수의 강의를 듣고 교과서를 몇 번이나 읽어보고 자세히 공부해야 한다. 의미가 워낙 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본법에 기가 막힌 언어적 오류가 너무나 많다. 그 오류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한 한글 맞춤법 실수가 있는가 하면 기초적인 문법 오류도 있다. 국어에 있지도 않은 단어가 쓰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단 하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되고 완벽해야 할 법조문에 왜 이렇게 많은 오류가 있는가. 그것은 법률을 제정할 당시, 즉 1950년대와 1960년대초에 서둘러 법을 제정하면서 '우리말'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조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에는 '받어'라는 표현이 몇 군데 나온다. 물론 '받어'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받아'라고 된 조문이 더 많다. 문제는 '받어'라고 된 조문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다.
민법은 1958년에, 형법은 1953년에, 형사소송법은 1954년에 제정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에겐 '받어'면 어떻고 '받아'면 어떻고 싶었을까. 거기까지 관심이 미친 법률가들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기본법 조문에 들어간 '받어'가 60~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내용 개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이다. 간혹 왜 이들 조문에 '받어'라 되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받아'로 바꾸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틀린 줄 번히 알면서 왜 그 법을 개정하지 않나?
민법 제920조의2는 1990년 1월에 신설된 조인데 '그러하지 아니한다'라는 희한한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하다'는 형용사이기 때문에 부정을 하면 '그러지 아니하다'지 '그러하지 아니한다'가 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라고 하지 누가 '그렇지 않는다'라고 하나? 막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이나 저지를 법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법조문에 들어갔는데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법을 통과시킨 것도 놀랍지만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왜 바로잡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말이 그렇게 하찮은가.
형법 제136조는 공무집행방해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제2항에 '조지하거나'가 나온다. 1953년에 형법을 제정할 당시에 '阻止하거나'라고 했고 '阻'는 음이 '조'이기 때문에 지금 '조지하거나'이다. 그러나 '阻止'는 일본어이다. 한국어는 '沮止(저지)'가 있을 뿐이다. 당연히 국어사전에도 '저지하다'만 있지 '조지하다'는 없다. '조지하다'를 아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한국인 중에는 없다. 그런데 이 형법은 70년이 넘도록 고쳐지지 않고 있다. 수십 년 검사 생활을 한 이가 우리 형법에 '조지하거나'라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저지하거나'로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아니다. '조지하거나'로 돼 있다.
대단히 자주 사용되는 민법 조문이 있다. 소멸시효에 관한 조이다. 민법 제162조는 다음과 같다.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 되어 있다. 소멸시효가 뭘 완성하나? '완성한다'가 잘못 쓰인 말이다. '완성된다'라 해야 하는데 '완성한다'라 한 것이다. 틀린 말이 무려 66년째 고쳐지지 않고 지금도 민법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지난 세월 법대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채권은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고 가르쳤다. 국어 왜곡이 아니고 뭔가.
오늘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의 4년 임기가 시작됐다. 제22대 국회에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6법의 오류들이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 너무 오랜 세월 우리는 법조문에 무관심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우리말이 망가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