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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04. 2024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

문법에 성역은 없다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란 법이 있다. 2009년 4월 제정된 법으로 약칭 농어업경영체법이다. 이 법은 농어업경영체를 육성하고 농어업의 공동경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농조합법인이나 영어조합법인이 조직변경이나 합병, 분할을 하려고 할 경우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채무를 변제하거나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제18조와 제18조의2에 담겨 있다. 다음과 같다.


제18조(영농조합법인 및 영어조합법인의 조직변경) ⑥ 채권자가 제5항에 따른 일정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는 영농조합법인 또는 영어조합법인이 채무를 변제하거나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지 아니하면 조직변경의 결의는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 <개정 2015. 1. 6.>


제18조의2(영농조합법인 및 영어조합법인의 합병ㆍ분할) 

⑥ 채권자가 제5항에 따른 일정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는 영농조합법인 또는 영어조합법인이 채무를 변제하거나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지 아니하면 합병ㆍ분할의 결의는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본조신설 2015. 1. 6.]


여기서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조문에 사용된 이상한 표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이다. 법률 조문이다 보니 자꾸 읽다 보면 법의 취지가 이해되면서 표현 자체에 대해 의문을 잘 느끼지 못하는 모양인데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기괴하고 뒤틀린 표현이다. 


'아니한다'는 보통 줄여서 '않는다'라고 하는데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가 이상한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하지 않다면 되풀이해 읽다가 어느새 익숙해져서 이상한 줄을 모를 뿐이지 정상적이고 바른 표현이어서 이상하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효력 발생한다'는 국어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효력 발생한다'가 바른 표현이다. 누가 '화재를 발생한다'고 하나? 아무도 '화재를 발생한다'고 하지 않는다. '화재가 발생한다'고 한다. '효력'에 대해서만 '효력을 발생한다'가 성립할 수는 없는 법이다. '효력을 발생한다'는 그냥 틀린 표현일 뿐이다. 법의 권위에 눌려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뿐이다.


법이라고 문법을 어겨도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조문일수록 문법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고 제헌국회를 구성한 뒤 7월 17일에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공포했다. 그때 헌법 제40조에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일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게 문제의 씨앗이었다. 그 씨앗이 자라고 자라 오늘날 헌법 제53조 제7항에도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1954년에 제정된 형사소송법 제264조 제1항에는 '재정신청은 대리인에 의하여 할 수 있으며 공동신청권자 중 1인의 신청은 그 전원을 위하여 효력을 발생한다.'가 들어가 지금도 그대로이고, 2000년대에 만들어진 농어업경영체법에도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가 들어갔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법에 성역이 없듯이 문법에도 성역이 있을 리 없다. 법조문이라고 문법을 어겨도 되는 것은 아니다. 틀린 표현이 고쳐지지 않고 법조문에 버젓이 남아 있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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