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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07. 2024

사소한 것 같지만

반듯한 접속을 보고 싶다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이란 법이 있다. 2015년 1월에 제정된 법으로 약칭 농어업인안전보험법이다. 이 법에 따라 농어업인은 농어업작업 중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신체장해 또는 사망 등에 대하여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법 제8조 제2항은 농어업작업안전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제1호와 제2호가 그것이다. 다음과 같다.


제8조(농어업작업안전재해의 인정기준)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농어업작업안전재해로 인정하지 아니한다.

1. 농어업작업과 농어업작업안전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

2. 농어업인 및 농어업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


여기서 제2호의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를 찬찬히 살펴보자. 이 조문이 무엇을 의도하는지를 파악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농어업인 및 농어업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 또는 농어업인 및 농어업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에는 농어업작업안전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앞뒤의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어떻든 구별이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와 '그것이 원인이 되어'가 접속될 수 있느냐이다.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는 조사가 붙지 않은 명사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는 부사이다. 조사 없는 명사구와 부사절이 '또는'으로 접속이 되었다. 부사구와 부사절이 '또는'으로 접속되는 것은 문법적이고 자연스럽지만 조사 없는 명사구와 부사절이 '또는'으로 접속되는 것은 바르지 않다. 명사구를 부사구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부사격 조사 ''만 붙이면 부사구가 된다. 즉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라고 했어야 하는데 '' 없이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라고만 한 것이다.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라고 했어야 하지만 '고의, 자해행위나 범죄행위'만으로도 법조문의 취지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 보면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비록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틀린 건 틀린 거다. 일국의 법률 문장에 결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 흠을 잡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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