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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12. 2024

농어업인삶의질법이 있다

농어촌도 살리고 우리말도 살려야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이란 법이 있다. 약칭 농어업인삶의질법이다. 2004년 3월 제정되었다. 이 법을 읽어 내려가면서 깊은 감동을 느낀다. 농업인, 어업인을 위한 국가의 배려가 이 정도인가 싶을 만큼 참으로 다양한 농어업인을 위한 지원 대책이 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정부는 농어업인의 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하여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농어업인이 부담하는 국민건강보험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고, 정부는 농어업인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농어업인이 부담하는 국민연금보험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거나 대중교통에 취약한 농어촌에 거주하는 고령 농어업인 등 주민의 교통편의를 위하여 해당 지역에 적합한 교통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요컨대 농어촌 주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이 법률에 마련되어 있다. 국민 대부분이 농어업에 종사했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다. 


이제 농어촌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거주할 뿐이고 젊은이들은 찾기 힘들다. 그러니 벌써 20년 전에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뒷받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촌 사정은 그리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젊은이들이 농어촌으로 몰려들 날은 과연 올까. 


필자는 이 법을 읽으면서 농어업인에 대한 각별한 배려에 감동도 느꼈지만 한편으로 법이 이렇게 막연해서야 되나 하는 의문을 느끼기도 했다. 일테면 제36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제36조(농어촌 투자유치 활성화)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어촌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각종 법령에 규정된 규제를 최대한 완화하여야 한다.


농어촌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법령에 규정된 규제를 최대한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선언적 의미야 있겠지만 어떤 법령에 규정된 규제를 언제까지 어떻게 완화해야 하는지가 없다. 그러니 이렇게 막연한 조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있으나마나한 조문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나. 과연 이 조항 때문에 각종 법령에 규정된 규제가 완화된 사례가 있나?


그리고 법조문의 국어 표현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일테면 제33조는 다음과 같다.


제33조(농어촌의 문화예술 진흥)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어촌의 전통문화를 계승ㆍ발전시키기 위하여 향토문화축제를 활성화하여야 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어촌 주민의 문화예술 활동을 진흥시키고, 보다 높은 문화 향수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하여 농어촌에서 문화예술 공연ㆍ전시 등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여기서 '농어촌 주민의 문화예술 활동을 진흥시키고'라는 구절을 볼 수 있는데 '진흥시키고'가 의아함을 낳는다. '농어촌 주민의 문화예술 활동을 진흥하고'와 무엇이 다를까. '진흥하고'로 충분한데도 '진흥시키고'라고 했다. '시키다'를 남발하고 있는 예다. 대중의 언어생활에서 불필요한 '시키다'가 남발되고 있는데 법조문에까지 이런 경향이 침투했다.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런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은 농어촌을 살리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의지가 담겼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법률이 아닐 수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는데 요즘 농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무엇보다 농어촌이 피폐하다. 농어촌도 살려야 하고 우리말도 살려야 한다. 어느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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