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Jun 14. 2024

개헌

헌법 전문에 대한 생각

역대 국회의장 중에서 개헌을 말한 이는 많다. 가까이로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장 직속으로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두고 2023년 1월 9일 제1차 전체회의를 열었고 1월 31일에 제2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그걸로 전체회의는 끝이었다. 지역별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제22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는 흐지부지됐다.


얼마 전 우원식 국회의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강기정 광주시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추진에 힘쓰겠다고 했다. 5·18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는 사실상 여야가 합의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지 않겠느냐고도 했단다. 이런 논의에 대한 필자의 소회를 몇 자 적는다.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됐고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헌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제10차 헌법이다. 아홉 차례 개정됐다는 뜻이다. 제헌헌법 때는 대통령을 국회의원 중에서 뽑았고 제2차 헌법 때부터 대통령을 국민 직선제로 뽑았다가 1960년 4.19 이후에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기도 했다. 1963년 국민투표로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로 돌아갔다가 1972년 유신헌법에서 대통령 간선제를 택했다. 1980년에 개헌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간선제였고 1987년에 비로소 오늘날의 헌법이 마련되었다.


76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홉 차례 개헌했는데 지금 헌법은 36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꽤 오래 개정하지 않고 있다. 권력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다.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더라도 4년 중임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하고 여야 합의가 있어야 개헌할 수 있다.


최근 조선일보에 재미있는 칼럼이 실렸다. "개정 헌법의 전문, 무엇을 넣고 뺄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인데 40개국 헌법을 비교해 봤더니 24개국 헌법만이 전문(前文, preamble)을 두고 있었단다. 16개국 헌법에는 전문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전문이 있는 24개국 헌법 중에도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언급한 사례는 중국, 이라크, 대한민국 등 8개국뿐이라 한다. 전문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전문 안에 역사적 사건을 언급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선택일 뿐이다.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는다면 1979년의 부마항쟁이나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나올 것이다. 그런 사건 또한 상당한 역사적 의미가 있지 않나. 필자는 헌법 전문에 어떤 역사적 사건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사견을 말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이 안고 있는 다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헌법 전문은 제헌헌법에도 들어 있었고 제10차 헌법인 지금의 헌법에도 들어 있다. 열 번의 헌법에서 변함없는 것은 헌법 전문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 헌법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대한민국헌법의 전문은 맨 끝의 날짜를 빼면 한 문장이다. 헌법 전문을 읽을 때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계승하고', '입각하여', '공고히 하고', '타파하며', '확고히 하여', '균등히 하고', '발휘하게 하며', '완수하게 하며', '기하고', '이바지함으로써', '다짐하면서', '거쳐', '개정한다' 등 모두 13개의 동사가 접속되었다. 이런 복잡한 접속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이 전문을 작성한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모르겠다. 전문이 과연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이렇게 많은 말을 단 한 문장으로 욱여넣어야 하나. 두세 문장이나 서너 문장으로 쪼갤 때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훨씬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개헌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면 권력구조에 관한 논의도 활발할 테지만 전문에 5.18을 넣을 거냐로 또한 뜨거울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그게 다가 아니다. 전문의 내용이 읽는 국민의 머릿속에 확연하게 들어오도록 전문을 두세 개의 문장으로 쪼개는 작업이 못지않게 중요하고 시급하다. 읽어도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오는 전문을 두면 뭣하나. 그러지 못할 바에는 차제에 전문을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농어업인삶의질법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