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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21. 2024

불안정한 접속

우리는 법조문 앞에서 작아지는가

농업ㆍ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란 법이 있다. 약칭 농업식품기본법이다. 이 법의 제4조는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및 농업인ㆍ소비자 등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그 제1항과 제5항은 다음과 같다.


제4조(국가ㆍ지방자치단체 및 농업인ㆍ소비자 등의 책임)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기능을 증진하고, 안전한 농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농업 인력 육성,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소득안정,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종합적인 정책을 세우고 시행하여야 한다. <개정 2012. 12. 18., 2015. 6. 22.>


⑤ 소비자는 농업ㆍ농촌의 공익기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농산물과 식품의 건전한 소비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개정 2015. 6. 22.>


누누이 지적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법조문에는 접속을 바르게 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접속을 할 때는 명사와 명사를 연결하든지 동사와 동사를 연결해야 한다. 단어보다 큰 단위인 구를 접속할 때도 같다. 명사구와 명사구를 접속하든지 동사구와 동사구를 접속해야 한다. 명사와 동사를 접속하면 안 된다. 쉬운 예를 들자면 "나는 식사 그리고 차를 마셨다."라고 하면 되겠는가. "나는 식사를 했고 차를 마셨다."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식사 그리고 차를 마셨다." 같은 이상한 표현이 제4조 제1항에 있다.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소득안정,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에서 앞 부분인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소득안정'은 명사구인데 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는 동사구다. 앞 부분을 그냥 둔다면 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를 '삶의 질 향상을'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명사구와 명사구가 접속이 되어 문장이 반듯해진다.


제5항은 그 반대의 경우다 앞은 동사구인 '이해를 높이고'인데 뒤는 '건전한 소비'로 명사구다. 동사구와 명사구가 접속되었다. 뒤를 동사구인 '농산물과 식품을 건전하게 소비하기 위하여'로 바꾸든지 아니면 앞을 '농업ㆍ농촌의 공익기능에 대한 이해 증진과'와 같이 명사구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법조문 앞에서 작아지는 것 같다. 법조문을 읽을 때 법조문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할 뿐 그 문장이 정상적이고 문법적인지는 살피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법조문의 취지가 이해되기만 하면 그 문장이 바르지 않아도 문제라 여기지 않고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은 잘못된 접속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법조문이 문법에 맞게 씌어 있을 때 조문의 취지가 명확하게 드러남은 물론이다. 바른 문장은 한번에 이해되지만 틀린 문장은 여러 번 읽어야 비로소 뜻이 드러난다. 법조문이 그래야 할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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