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현상
오늘 한겨레신문 황춘화 사회데스크의 칼럼 '법률가의 말장난'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글을 읽고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Fred Rodell)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는 1907년생으로 불과 26세인 1933년에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됐고 40년간 거기서 가르쳤다. 그는 수많은 법학자 가운데서 매우 특이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그의 저서 제목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는 원저의 제목이 "Woe Unto You, Lawyers!"(1939)로서 매우 도발적이다. 자기 자신이 법학자면서 법률가들은 저주받을 거라니!
프레드 로델 교수는 법률 언어가 지나치게 난해해서 대중은 접근할 수 없으며 법률가들만 알 수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이미 1930년대에 법률 언어의 난해함을 지적한 책이 나왔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저명한 고위 법관들 중에 법률 언어를 명료하게 하려고 노력한 이들이 있었고 울프경, 빙엄경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라 한다.
그러나 로델, 울프경, 빙엄경 같은 법률가들이 주류는 아니어 보인다. 법조계 인사들은 대체로 기존 법률 언어를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완고한 듯하다. 왜냐하면 영미에서 법률 언어를 쉽게 하려는 것은 비문법적인 문장을 문법적인 문장으로 바꾸려는 게 아니다. 문법적이긴 하지만 너무 어려운 용어를 쉽게 바꾼다든지 표현을 평이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다르다. 민법, 형법, 상법에는 아예 문장이 국어 문법을 어겨 말이 안 되는 조문이 적지 않다. 일본 법을 번역하면서 잘못 번역한 게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이를 바로잡자는 주장을 모른 체 외면한다. 그냥 둬야 일반인이 법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이다. 법관들이라면 신주처럼 떠받드는 조문일 것이다. '신의에 좇아'가 말이 되나? '신의를 지켜'라고 하면 얼마나 알기 쉬운가. 하지만 1958년에 제정되고 66년째 고치지 않고 있다. 참 끈덕지다. 법 언어는 국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