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Jun 24. 2024

원룟값, 재룟값

한글 맞춤법을 잘못 적용한 국어사전

아침에 한 초등 동창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아침 방송에 보니 '원룟값', '재룟값'이라 하던데 이 표기가 맞는지 물어왔다. 내가 그쪽을 전공했고 그쪽 직장에 평생 근무했으니 내게 물어보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원룟값', '재룟값'을 맞다고 해야 하나. 틀렸다고 해야 하나. 당장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내 말을 과연 믿어줄까. 그래서 일단 '보기 나름'이라고 한 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주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내게 카톡으로 물어온 그 친구만 의아하게 생각했을까. 다른 시청자들은 의아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물으나마나 수많은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원룟값', '재룟값'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나.


그렇다면 왜 방송사는 굳이 '원룟값', '재룟값'을 자막에 썼을까.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방송사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PD도 있고 대본을 쓰는 작가도 있고 자막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엔 '원룟값', '재룟값'에 의아함을 느낀 사람이 없었을까. 분명 '원룟값', '재룟값'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자막에 그렇게 나간 것은 자막 담당자가 국어사전을 들이밀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사전에 이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 국어사전은 왜 '재룟값'이라 올려 놓았을까. 이유가 있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을 근거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다음과 같다.



예컨대 '전세집'이라 적지 않고 '전셋집'이라고 적는 것은 한글 맞춤법 제30항 2에 따른 것이다. '전세'는 한자어고 ''은 순우리말인데 둘이 합해 '전세집'이 되면 발음이 [전세]으로 된소리가 나니까 ''에 사이시옷을 받쳐 ''으로 적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편찬한 이들이 ''이라고 표제어를 올린 것도 한글 맞춤법 제30항을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중대한 오해가 있었다. '전세'와 ''이 연결되면 '전셋집'이라는 합성어가 된다. 그런데 '재료'와 ''이 연결되면 '재료값'은 합성어인가? 합성어라면 '재룟값'으로 적는 게 맞다. 그러나 합성어가 아니라면 '재룟값'으로 적으면 안 된다. 


합성어란 뭔가? 단어를 말한다. '재료'와 ''이 연결되면 단어인가? '재료+값'은 '재료의 값'이란 뜻 아닌가. ''가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지 ''가 있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이에 반해 '전셋집'은 '전세의 집'이 아니지 않나. 요컨대 '전셋집'은 단어지만 '재료값', '원료값'은 단어가 아니다. 즉 합성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재료 값', '원료 값'이라 적어야 옳다. 띄어쓰는데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할 까닭이 없다. '재료 값', '원료 값'은 구(句)지 단어가 아니다.


요컨대 '재룟값'은 한글 맞춤법 제30항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데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엉뚱하게 국어사전에 '재룟값'이 올라갔고 그걸 따른 방송사는 수많은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글 맞춤법이 잘못이 아니다. 한글 맞춤법을 잘못 적용한 국어사전이 잘못이다. 우리말샘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결괏값', '과잣값', '봉툿값' 따위를 보면 민망스러워 낯이 뜨겁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정한 접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