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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24. 2024

'수가', '세비' 같은 말들

말의 평등은 멀었다

의대 증원 문제가 좀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한 신문이 이에 대해 보도하면서 '의료수가'를 대폭 올리지 않는 한 의대생이 증원되더라도 난관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기서 수가라는 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수가酬價다. 국어사전은 '수가'를 '보수로 주는 대가'라 뜻풀이하고 있다. 필자의 의문은 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내는 돈을 수가라 하는지다.


우선 수가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됐는지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에도 병원이 있었고 환자는 진료를 받고 돈을 냈을 것이다. 광복 후와 195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수가(酬價)'라는 말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신문에 쓰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신문 기사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그전에는 진료비, 의료비, 치료비, 병원비 등이라 했다. 물론 이런 말들은 지금도 쓰인다. 하지만 요즘은 수가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다. 진료비, 의료비, 병원비와 수가는 뜻이 다르다고. 짐짓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수가 대신에 진료비, 의료비, 병원비를 쓸 수 없는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뭔가 의미가 조금은 달라 보이니까. 그러나 뜻이 같은지 조금이라도 다른지에 대한 판단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다르다고 보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진료비수가는 뜻이 그리 다르지 않다. 


하고많은 서비스 업종이 있다. 어떤 일이든 수고를 하면 대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의료에 대해서만 '수가'라는 용어를 쓸까. 참 궁금하다. 이렇게 보수에 대해서 예외적인 용어가 쓰이는 직종이 또 있는데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들은 월급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받는 돈을 세비(歲費)라고 한다. 왜 장관은 월급을 받지만 국회의원은 월급을 받지 않고 세비를 받나? 이유를 모르겠다.


의사는 좀 특별한 직업이다. 의사에 대해서는 늘 선생님을 붙여 의사선생님이라고 하는 데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런 사회적 동의가 있다. 그들은 인술을 베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받는 보수에 대해서 수가라고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국회의원들이 받는 보수를 세비라 하는 것도 비슷하다. 왜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세비라 하나. 보좌관, 비서관은 월급을 받는데 국회의원은 꼭 세비를 받는다고 해야 하나? 특권의식 아닐까. 누가 그런 특권을 부여했나.


사회가 평등해지면서 언어도 그에 맞게 변화해 왔다. 영부인, 영식, 영애는 원래 '남의 부인, 아들, 딸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다 권위주의 정치 시대에는 대통령 한 사람의 부인, 아들, 딸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통령의 부인, 아들, 딸을 영부인, 영식, 영애라고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필자는 수가, 세비 같은 말이 쓰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느낀다. 말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진료비, 의료비, 치료비, 병원비 같은 알기 쉬운 말이 있지 않나. '수가 인상' 대신 '진료비 인상' 하면 안 되나. '국회의원 세비 동결' 대신에 '국회의원 보수 동결' 하면 되지 않나. 평등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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