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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02. 2024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

70년간 요지부동한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

모 대학 명예교수인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국어학회 회장도 지낸 분이다. 필자가 우송해준 책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그는 책의 제목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는 너무 점잖았고 "대한민국의 법은 초등학생 수준입니다"라 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즐비한 법조문에 대해 좀 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비판을 제목에 담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분의 지적은 물론 일리 있었지만 제목을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와 같이 누그러뜨린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제목이 너무 격하게 나가는 건 자칫 반발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제목은 은근했을지 몰라도 각 장의 제목만은 강도 높게 잡았다. 제1장이 말이 안 되는 문장, 제2장이 국어에 없는 단어였으니 말이다. 법조문이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법조문에 국어에 없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말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다.


필자는 요즘 다시 대한민국의 6법을 돌아보고 있다. 대부분 1950년대에 만들어진 이들 법은 로스쿨생들이 3년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과목이다. 이들 6법은 법관들이 판결문을 작성하고 검사가 공소장을 쓸 때, 또 변호사들이 변론문을 작성할 때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인용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법률의 말이 초등학생 국어 수준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6법에는 갖가지 오류가 책을 한 권 쓸 정도로 많지만 기가 찬 한 형사소송법 조문을 인용하면서 필자가 무엇을 역설하는지 상기시키고자 한다.


형사소송법 제306조 제4항

피고사건에 대하여 무죄, 면소, 형의 면제 또는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 제1항, 제2항의 사유있는 경우에도 피고인의 출정없이 재판할 수 있다.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이라니 이게 말인가 방군가.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될 때 만들어진 이  엉터리 문장은 올해로 70년을 맞이하지만 요지부동 그대로다. 고치지 않고 있다. 어찌 초등학생의 글보다 낫다고 하겠는가. 법조인들이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이토록 무감각할 줄은 참으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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