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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05. 2024

국가 법령 관리가 이리 허술하다니

주먹구구 중구난방

우리나라의 기본법인 6법은 1950년대와 1960년대초에 만들어졌다. 1948년 헌법과 정부조직법은 공포되었지만 정작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은 한참 뒤에나 만들어졌다. 양이 방대하니 단시일 내에 만들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형법은 1953년, 민법은 1958년, 상법은 1962년에 제정됐다. 그나마도 일본의 형법, 민법, 상법에 크게 의존해서 만들었는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들 법을 제정, 공포할 때 철저하게 한자어는 한자로 적었다. 조사와 어미 정도만 한글로 적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글로 바꾸는 법 개정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한자어가 한자로 적혀 있다. 그러나 요즘 일반인은 물로 판검사, 변호사도 한자에 익숙한가? 그렇지 않다. 판결문, 공소장, 변론문을 다 한글로 적는다. 그러니 국가가 일반에게 제공하는 법령집도 모조리 한글로 바꾸어서 보여준다.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 로스쿨생에게 제공하는 수험용 법전도 죄다 한글로 적혀 있다. 법 개정 없이 그렇게 하는 게 문제일 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사실 국가법령정보센터는 한글판, 한자판을 모두 제공한다. 한 예를 들면 상법 제332조의 한자판은 다음과 같다. 


第332條(假設人, 他人의 名義에 依한 引受人의 責任) ①假設人의 名義로 株式을 引受하거나 他人의 承諾없이 그 名義로 株式을 引受한 者는 株式引受人으로서의 責任이 있다.

②他人의 承諾을 얻어 그 名義로 株式을 引受한 者는 그 他人과 連帶하여 納入할 責任이 있다.


그러나 한글판은 다음과 같다.


제332조(가설인, 타인의 명의에 의한 인수인의 책임) ①가설인의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거나 타인의 승낙없이 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한 자는 주식인수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②타인의 승낙을 얻어 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한 자는 그 타인과 연대하여 납입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졸저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를 집필하면서 국가법령정보센터를 이용했을 때 상법 제332조는 다음과 같았다.


제332조(가설인, 타인의 명의에 의한 인수인의 책임) ①가설인의 명의로 주식을 인수하거나 타인의 승락없이 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한 자는 주식인수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②타인의 승락을 얻어 그 명의로 주식을 인수한 자는 그 타인과 연대하여 납입할 책임이 있다.


몇 달 사이에 '승락'이 '승낙'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언제, 누가, 왜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승락'을 '승낙'으로 바로잡았다. '승락'은 잘못됐다는 누군가의 지적이 있었고 그래서 바꾸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런데 우습다. 왜 그런가. 상법 제403조 제6항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제403조(주주의 대표소송)

⑥회사가 제1항의 청구에 따라 소를 제기하거나 주주가 제3항과 제4항의 소를 제기한 경우 당사자는 법원의 허가를 얻지 아니하고는 소의 취하, 청구의 포기ㆍ인락ㆍ화해를 할 수 없다. 


'승락'은 '승낙'으로 바꾸었는데 왜 '인락'은 '인낙'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나. 국가의 법령 관리가 엉망이다. 주먹구구고 중구난방이다. 말에 대해 이리도 무관심할 수 없다. 일찍이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고 했다. 언제나 나라가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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