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중구난방
우리나라의 기본법인 6법은 1950년대와 1960년대초에 만들어졌다. 1948년 헌법과 정부조직법은 공포되었지만 정작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은 한참 뒤에나 만들어졌다. 양이 방대하니 단시일 내에 만들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형법은 1953년, 민법은 1958년, 상법은 1962년에 제정됐다. 그나마도 일본의 형법, 민법, 상법에 크게 의존해서 만들었는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들 법을 제정, 공포할 때 철저하게 한자어는 한자로 적었다. 조사와 어미 정도만 한글로 적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글로 바꾸는 법 개정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한자어가 한자로 적혀 있다. 그러나 요즘 일반인은 물로 판검사, 변호사도 한자에 익숙한가? 그렇지 않다. 판결문, 공소장, 변론문을 다 한글로 적는다. 그러니 국가가 일반에게 제공하는 법령집도 모조리 한글로 바꾸어서 보여준다.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 로스쿨생에게 제공하는 수험용 법전도 죄다 한글로 적혀 있다. 법 개정 없이 그렇게 하는 게 문제일 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사실 국가법령정보센터는 한글판, 한자판을 모두 제공한다. 한 예를 들면 상법 제332조의 한자판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한글판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필자가 졸저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를 집필하면서 국가법령정보센터를 이용했을 때 상법 제332조는 다음과 같았다.
몇 달 사이에 '승락'이 '승낙'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언제, 누가, 왜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승락'을 '승낙'으로 바로잡았다. '승락'은 잘못됐다는 누군가의 지적이 있었고 그래서 바꾸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런데 우습다. 왜 그런가. 상법 제403조 제6항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승락'은 '승낙'으로 바꾸었는데 왜 '인락'은 '인낙'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나. 국가의 법령 관리가 엉망이다. 주먹구구고 중구난방이다. 말에 대해 이리도 무관심할 수 없다. 일찍이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고 했다. 언제나 나라가 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