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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05. 2024

세월이 70년 흘렀다

정비할 때도 되지 않았나

민법, 형법 등을 실체법이라고 하고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은 절차법이라 한다. 법은 실체법만 있으면 되지 않고 실체법의 적용 절차를 명시한 절차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체법 못지않게 절차법도 중요하다. 그런데 실체법 중에서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비교해 보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민사소송법을 읽으면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 물론 어려운 법률용어가 섞여 있으니 민사소송법도 변호사들에겐 쉬워도 일반 국민이 그리 만만하게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찌 됐건 민사소송법의 문장은 국어 문장으로서 대체로 평이하다. 


이에 반해 형사소송법은 전혀 딴판이다. 민사소송법은 죄다 한글로 개정했지만 형사소송법은 새카맣게 한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형사소송법도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들어가거나 수험용 법전을 펼치면 모두 한글로 되어 있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한글로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한자냐 한글이냐가 아니다. 사용된 단어가 요즘은 쓰지 않는 단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민사소송법은 2002년에 완전히 새로 쓰다시피 개정을 했지만 형사소송법은 1954년에 제정될 때 그대로기 때문이다. '건정', '선차', '좌석하다', '발문하다' 같은 말이 형사소송법에 들어 있는 말인데 이런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국어사전에조차 없는 말들인데 형사소송법에는 버젓이 들어 있다. 


그런 예로 '신문지'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440조에 나오는 말이다. 


형사소송법

제440조(무죄판결의 공시) 재심에서 무죄의 선고를 한 때에는 그 판결을 관보와 그 법원소재지의 신문지에 기재하여 공고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이를 원하지 아니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신문지'가 무슨 뜻인가. 요즘 '신문지'의 뜻은 '신문 기사를 실은 종이'다. 실제로 국어사전에 그렇게 뜻풀이되어 있다. 용례로서 '신문지에 싸다', '신문지로 덮다', '신문지를 접다'를 들고 있기도 하다. 요즘 '신문지'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형법 제440조의 '신문지'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이 조문의 '신문지'는 그냥 '신문'이라는 뜻이다. 1950년대에는 '신문지'가 '신문'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1954년 9월 23일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의 관보


70년 사이에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다. 그게 정확히 몇 년쯤부터 바뀌었는지 모르나 분명한 건 '新聞紙'의 뜻은 '신문'이라는 뜻에서 '신문기사를 실은 종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문'으로서의 '新聞紙'는 '紙'가 떨어져 나가 '신문'이 되었고...


그렇다면 형사소송법 제440조의 '新聞紙'도 '新聞'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도 여전히 그대로고 단지 한자를 한글로만 바꾸어서 '신문지'라고 하고 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인데 의사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법은 보수적이어야 한다면서 이 나라 법조인들은 법조문을 정비할 생각을 않고 있다. 민사소송법은 2002년에 대대적으로 손질을 하여 이런 낡고 케케묵은 단어 때문에 의미 해석에 골머리를 앓는 일이 없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70년째 그대로다. 형사소송법에 들어 있는 '건정', '선차', '신문지' 등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 정비할 때도 됐지 않나.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들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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