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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0. 2024

6법을 생각한다

비문투성이 법조문을 방치하는 심리는 무엇인가

오늘 한 조간신문은 민사실무연구회라는 단체의 창립 50주년 행사에 대해 사진과 함께 자세히 보도했다. 전현직 대법관들이 모여 50주년을 축하하고 케이크를 잘랐다. 한 대법관은 바이올린을 켜면서 행사를 더욱 빛냈다. 그러나 이 보도를 지켜보는 필자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민사실무연구회는 회원 수만 780여 명에 이르고 지난달까지 무려 454차례 연구 발표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민사법의 중심인 대한민국의 민법은 어떠한가. 필자는 2022년 민법의 비문(非文)을 모아 <민법의 비문>이라는 책까지 펴냈지만 법조계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가 문제냐는 것이겠다. 수없이 많은 비문이 민법에 있지만 한 예로 민법 제162조를 보자.


제162조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대법관은 차치하고 로스쿨 학생에게도 이 조항은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채권을 갖고 있어도 10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뜻이다. 10년 내에 행사를 해야 채권은 소멸하지 않는다. 행사는 청구로 한다. 법원에 청구해야만 한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채권에 관한 법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조항이 말이 되는지, 문법에 맞는지를 묻는 것이다.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가 무슨 말인가. 소멸시효가 무엇을 완성한다는 말인가. 법조인들은 너무나 많이 들어서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가 말이 되는가. 이게 한국말인가.


민법은 1958년 2월 22일 공포되었다. 그때 민법 제162조 제1항은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다."였어야 했지만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다."였고 이 괴상한 문장이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그간 이 땅에 수많은 판사, 검사, 변호사가 배출되고 활동했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엉뚱하게 법의 문외한인 필자가 <민법의 비문>,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라는 책을 써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쳤다.


민사실무연구회가 지난 50년 동안 수백 차례 연구 발표회를 열고 깊이 있는 토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같은 얼토당토않은 문장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조인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법조문이 엉망진창인데 이를 내버려두는 심리는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불가사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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