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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9. 2024

조건이 성취한 때?

조건이 뭘 성취하나?

형사소송법에는 제441조뿐 아니라 많은 '판결이 확정 후'가 있다. 다 '판결이 확정 후'이라야 맞다. 틀린 문장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오류가 민법에도 즐비하다. 예컨대 민법 제147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147조(조건성취의 효과) ①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민법총칙 제1편 제5장 조건과 기한의 첫머리에 있는 조문이다. 조건이 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이루어졌을 때부터 효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 이를 담은 문장은 왠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뜻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때문이다. 도대체 '조건이 성취한 때'가 무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가. '성취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 없이 쓰였다. 그래서 자꾸 읽게 되고 무슨 뜻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건이 성취된 때부터'라 되어 있었다면 조금도 의문이 들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럼 왜 이런 괴상한 문장이 민법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이 역시 일본 민법을 번역하면서 오역한 데서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일본 민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第百二十七条 停止条件付法律行為は、停止条件が成就した時からその効力を生ずる。


'成就した時から'라 되어 있기에 '성취한 때로부터'라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成就した時から'는 '성취 때부터'라 할 때 바른 한국어 문장이 된다. 별 생각 없이 쓴 잘못된 문장이 민법 제정 때 들어가서 70년이  가깝도록 그대로이다. 이 땅의 수많은 우수한 재목이 지난 60년 이상 판검사, 변호사가 되고자 법학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판검사, 변호사가 되었다. 그들은 "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와 같은 괴상한 문장을 접하고도 법의 내용, 취지만 이해하고 그것을 취했을 뿐 틀린 문장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껏 그대로 아니겠는가.


만일 위 조문이 "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된 때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라면 법률가가 아니라 일반인도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민법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민법에는 "정지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와 같은 요상한 조문이 참으로 많다. 그러니 보통 사람은 좀체 이해할 수 없는 게 민법이구나 하면서 법에 대해 알고 이해하길 포기하지 않겠는가. 법이 그래서 되나. 안 된다 생각한다. 단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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