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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30. 2024

상속 개시

앞에서는 '개시된다' 뒤에서는 '개시한다'

앞에서 본 '공소시효는 완성한다', '조건이 성취한 때'는 '완성된다', '성취된'이라 해야만 바른 한국어 문장인데 '완성한다', '성취한'이라 함으로써 비문이 되고 말았다. 즉 '완성하다'와 '성취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이다. '개시하다'는 어떨까. '개시하다'도 마찬가지로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이다. 그러므로 자동사로 쓰일 때는 '개시되다'라 해야 한다. 그런데 민법 제997조와 제998조에는 '개시된다'도 있고 '개시한다'도 있다.


제997조(상속개시의 원인) 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된.


제998조(상속개시의 장소) 상속은 피상속인의 주소지에서 개시한다.


똑같은 구조인데 제997조에서는 '개시된다', 제998조에서는 '개시한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이렇다.


제997조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되었을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제998조는 1990년 1월 13일에 만들어졌다. 이때 종전의 '개시된다'를 '개시한다'라고 바꾼 것이다. 즉 1958년에 민법이 제정되었을 때는 관련 조문이 다음과 같았다.


제981조(호주상속개시의 장소) 호주상속은 피상속인의 주소지에서 개시된다.


'피상속인의 주소지에서 개시'를 1991년에 '피상속인의 주소지에서 개시'로 바꾸었던 것이다. '개시'는 피동적인 뜻이 강하니 이를 피하고자 '개시'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은 왜 제997조의 '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는 그냥 그대로 두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사망으로 인하여'가 '개시한다'보다는 '개시된다'와 어울리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997조에서는 '개시된다', 제998조에서는 '개시한다'라고 달리 쓰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필자의 주장은 '개시된다'든 '개시한다'든 어느 하나로 통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개시한다'로 통일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제997조에서는 '개시된다', 제998조에서는 '개시한다'로 굳이 달리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제997조에서 '사망으로 인하여'가 '개시한다'와 어울리지 못한다면 제997조는 '상속은 사망과 함께 개시한다'면 어떻겠는가. 


요컨대 제997조의 '개시된다'도 맞고 제998조의 '개시한다'도 맞다. 어느 하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제998조의 '개시한다'는 타동사로 쓰였는데 그 목적어가 '상속'이다. 그럼 주어는 무엇인가. 생략되었다. '우리는'이든지 '인간은'이든지쯤 될 것이다. 그런 주어는 생략해도 좋다고 보았을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997조에서는 '개시된다', 제998조에서는 '개시한다'로 달리 표현하기보다는 통일을 기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공소시효는 완성한다'나 '조건이 성취한 때'처럼 터무니없는 오류는 아니지만 이런 것도 좀 더 낫게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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