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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01. 2024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앞에서 자동사를 써야 하는데 타동사를 잘못 쓴 법조문의 사례를 많이 살펴보았다. '완성된다'라 해야 하는데 '완성한다'로, '성취된'이라 해야 하는데 '성취한'이라 한 것 등이 그런 예다. 이런 표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문을 품게 되고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법조계에서는 이상한 법조문에 충분히 길들여져서 그런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 민법 제193조도 대단히 짧은 문장이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다. 


민법

제193조(상속으로 인한 점유권의 이전)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


이 조문은 1958년 2월 민법이 제정, 공포되었을 때 그대로다. 공포되었을 때 이랬다.


第193條(相續으로因한占有權의移轉) 占有權은相續人에移轉한다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는 무슨 뜻인가. 무얼 말하고 있는가. 점유권이라는 권리는 상속인에게 넘어간다는 뜻이다. 즉 상속인은 피상속인으로부터 점유권을 넘겨받는다는 뜻이다. 점유권이 무엇인가.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는 권리를 말한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어떤 물건에 대한 점유권을 갖고 있었다면 피상속인이 죽으면 그 점유권이 상속인에게 넘어간다는 말이다. 이 단순하고 분명한 뜻을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나타냈다. 


그럼 어떻게 할 때 뜻이 분명하게 드러날까.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다."라고 했더라면 매우 단순명료했을 것이다. '이전하다'는 타동사이기 때문에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말이다.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에서 '점유권'이 '이전하다'의 목적어이고 주어는 '우리는' 같은 건데 생략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억지나 다름없다. 굳이 그럴 것 없이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다."라고 하면 간명하다. 이때 주어는 '점유권'이고 동사는 자동사인 '이전된다'이다.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와 같은 알듯 말듯한 엉터리 문장이 민법에서 하루속히 고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관습의 끈덕진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새로운 세대에까지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를 물려주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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