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Aug 01. 2024

원물로부터 분리하는 때에?

'분리하다'와 '분리되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지금까지 자동사를 써야 하는 자리에 타동사를 잘못 쓴 많은 법률 조문 예를 살펴보았다. 그런 조문은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케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법조문의 취지를 이해하고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법조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조문을 접하는 사람들은 아리송해하기 마련이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다음 민법 제102조 제1항도 다르지 않다.


민법 

제102조(과실의 취득) 

①천연과실은 그 원물로부터 분리하는 때에 이를 수취할 권리자에게 속한다.


이 조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컨대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그 사과는 누구의 것인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사과나무 주인의 것이라는 게 이 조문이 의미하는 바다. 별 대단한 법리가 아니다. 상식에 부합하는 매우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조문의 표현은 매우 거창하고 거창함을 넘어 이상야릇하기까지 하다. 이상야릇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분리' 때문이다.


"천연과실은 그 원물로부터 분리하는 때에 이를 수취할 권리자에게 속한다."의 주어는 '천연과실'이다. 이 문장 속에 들어 있는 '분리하는'의 주어는 무엇인가. '천연과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연과실이 그 원물로부터 분리하는 때에'가 말이 되나. '분리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도 '분리'은 잘못 쓰였다. '분리'이라야 하는데 '분리'이라 한 것이다. 시제는 '분리된'이나 '분리되었을'이면 더 좋을 것이다.


'~하다'와 '~되다'는 분명하게 구별해서 써야 한다. '완성하다'와 '완성되다', '분리하다'와 '분리되다'는 너무나 다른 말이다. '완성하다', '분리하다'는 주어가 목적어에 대해 하는 행동을 가리키고 '완성되다', '분리되다'는 주어에게 일어나는 일을 가리킨다. 어찌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쓸 수 있나. 그런데 우리나라 법조문에 이 간단한 문법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 법이 이렇게 엉성하면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 하고 있다. 단단히 잘못되지 않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점유권은 상속인에 이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