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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05. 2024

문법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임무에 위배하는'이라니!

'위반하다'와 비슷한 뜻으로 '위배하다'라는 말이 있다. '위배하다' 역시 타동사로서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어에는 조사 '을/를'이 쓰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나라 법조문에는 '~에 위배하다'라는 표현이 쓰이고 있다. 다음에 보이는 것이 그 예들이다.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①(생략)

②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상법

제622조(발기인, 이사 기타의 임원등의 특별배임죄) ①회사의 발기인, 업무집행사원, 이사, 집행임원, 감사위원회 위원, 감사 또는 제386조제2항제407조제1항제415조 또는 제567조의 직무대행자, 지배인 기타 회사영업에 관한 어느 종류 또는 특정한 사항의 위임을 받은 사용인이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배하다'는 타동사이기 때문에 '임무에 위배하는'이라는 말은 국어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는 바른 국어 표현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그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 '그 임무를 위배한 행위'라 하든지 아니면 더 낫게는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 '그 임무에 위배된 행위'라야 한다. 혹은 '그 임무에 어긋나는 행위', '그 임무에 어긋난 행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위 조문에 가장 적합한지는 법리에 밝은 법률가들이 판단하면 될 것이다. 


요컨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는 정상적인 국어 표현이 아니다. 뒤틀린 표현이기에 자연스럽지 않음은 물론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의문까지 불러일으킨다. 법조문에 들어 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국어 표현은 하루속히 편하게 읽히는 반듯한 표현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법조문은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표현마저 어색하고 낯설어서야 되겠는가. 법조문의 문장은 문법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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