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에 맞는 조사를 써야
웬만한 사람이라면 유치권 행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건물 외벽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면 받을 돈이 있는데 돈을 받지 못하니 유치하고 있는 건물을 사용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민법에는 유치권자가 채권 변제를 받기 위해 유치물을 경매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1항]. 나아가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돈을 받는 대신 유치물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항]. 이것이 민법 제322조이다.
제2항에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누구든지 이 말이 그리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는 감을 잡겠는데 표현은 깔끔하지 않아 보인다. 이유가 있다.
'유치물로'와 '충당할'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왜 맞지 않을까. 조사 '로'와 '충당할'이 충돌하고 있다. '충당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이다. 문맥상 '유치물'이 목적어로 보이는데 '유치물을'이 아니라 '유치물로'라 되어 있는 것이다. '유치물로'는 부사어지 목적어일 수 없다. 즉 '유치물을'이라 해야 하는데 '유치물로'라 했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치물로'라는 말을 굳이 쓰려면 뒤에 오는 말이 달라져야 한다. 만일 '유치물로 직접 변제받을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라고 했다면 문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충당할'을 쓰면서 '유치물로'라 했기 때문에 문법을 어겼고 그래서 어색하게 느껴진다.
'유치물로'라고 해도 법대생, 로스쿨생들은 전체 문맥으로 미루어 무슨 뜻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문법학자의 눈에는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는 문법을 어긴 불완전한 표현이다. 조사를 바로 쓰지 않아서 비문이다.
조사는 대충 아무렇게나 붙여도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맥에 맞는 조사를 쓸 때 문장의 뜻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1950년대에 별 생각 없이 만든 틀린 법조문이 지금껏 그대로인데 이대로는 안 된다. 참고로 민법 제338조 제2항에도 똑같은 오류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