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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13. 2024

어처구니없는 표현

법조문이 엉망이면서 법을 따르라 할 수 있나

상법은 주식을 인수한 사람에게 회사가 통지최고를 할 때 어디로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통지는 그냥 알리는 것이고 최고는 통지 중에서도 독촉하는 통지를 가리킨다. 통지나 최고를 주식인수증이나 주식청약서에 적힌 주소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 자로부터 회사에 통지한 주소로 하면 된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어 있다. 


상법

제304조(주식인수인 등에 대한 통지, 최고) ①주식인수인 또는 주식청약인에 대한 통지나 최고는 주식인수증 또는 주식청약서에 기재한 주소 또는 그 자로부터 회사에 통지한 주소로 하면 된다.


뭐가 잘못되지 않았나. 누가 봐도 대뜸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나. '그 자로부터 회사에 통지한 주소'에는 '통지한'이라는 동사의 주어가 없다. 문맥상 '그 자'가 주어인 것 같은데 주어라면 '그 자 회사에 통지한 주소'여야 한다. 그런데 '그 자로부터 회사에 통지한 주소'이니 어찌된 일인가. 조사를 잘못 썼다.


'그 자로부터'를 굳이 써야겠다면 뒤에 나오는 동사는 '통지된'이나 '통지 받은'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자로부터 회사에 통지한'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자로부터'와 '통지한'이 서로 맞지 않고 충돌한다. 이런 게 비문이다. 비문이니 무슨 말인지 의아함을 불러일으키고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오류는 상법 제353조 제1항에도 있다. 다음과 같다.


제353조(주주명부의 효력) ①주주 또는 질권자에 대한 회사의 통지 또는 최고는 주주명부에 기재한 주소 또는 그 자로부터 회사에 통지한 주소로 하면 된다.


위 상법 조문은 말이 안 되는 비문인데 대충 입법 의도를 파악하고는 그냥 넘어가온 지 어언 60년이 넘었다. 도무지 낯이 뜨거워 견딜 수 없다. 누가 우리말을 이토록 경시하는가. 입법부는 뭘 하고 있는가. 이런 비문은 하루바삐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법조문이 엉망이면서 법을 따르라고 할 수 있나. 부끄럽지 않나. 하긴 부끄러운 줄 모르니 지금껏 그대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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