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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14. 2024

'로서'와 '로써'

바르지 않은 건 고쳐야 하지 않나

'로서'와 '로써'는 다른 조사다. 의미가 다르다. '로서'는 '자격'을 나타내고 '로써'는 '수단, 방법, 도구'를 나타내니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엄연히 다르다. '로서'와 '로써'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의 국어 시간에 늘상 배우는 것이다. 시험 문제에도 곧잘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본법에 '로서'와 '로써'를 틀리게 쓴 조문이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다.


상법

제520조의2(휴면회사의 해산) ①법원행정처장이 최후의 등기후 5년을 경과한 회사는 본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아직 영업을 폐지하지 아니하였다는 뜻의 신고를 할 것을 관보로써 공고한 경우에, 그 공고한 날에 이미 최후의 등기후 5년을 경과한 회사로써 공고한 날로부터 2월 이내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신고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회사는 그 신고기간이 만료된 때에 해산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기간내에 등기를 한 회사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조문이 길어서 꽤 거창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한 내용이 아니다. 영업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신고를 하라고 했는데도 정해진 기간 안에 그 신고를 안 했다면 그 회사는 해산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조문이 안고 있는 문제는 전혀 딴 데에 있다. '회사로써'의 '로써'이다. 


위 조문에서 '로써'가 맞나? 아니다. 문맥을 보면 분명 '회사의 자격'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격을 가리키는 조사는 '로서'이지 '로써'가 아니다. '로써'는 수단이나 도구를 가리킨다. '회사로서'라고 해야 할 자리에 '회사로써'라고 한 것이다. 조금 앞에 나오는 '관보로써 공고한 경우에'의 '관보로써'는 바르게 썼다. '관보라는 수단을 통해서'라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회사로써'는 '회사로서'의 잘못이다.


이렇게 '로서'를 써야 할 자리에 엉뚱하게 '로써'를 쓴 예는 상법에 또 있다. 제406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상법

406조(대표소송과 재심의 소) 제403조의 소가 제기된 경우에 원고와 피고의 공모로 인하여 소송의 목적인 회사의 권리를 사해할 목적으로써 판결을 하게 한 때에는 회사 또는 주주는 확정한 종국판결에 대하여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목적으로'라는 말은 '~할 목적으로'처럼 쓰이지 '~할 목적으로써'와 같이 쓰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위 조문에서는 '회사의 권리를 사해할 목적으로써'라 하였다. 까닭 없이 ''가 들어갔고 조사를 잘못 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선명하게 이해되어야 할 조문이 구름 속에 숨은 듯 애매모호하고 알쏭달쏭한 느낌이 든다.


'회사로서'라고 해야 할 자리에 '회사로써', '목적으로'라고 해야 할 자리에 '목적으로써'라 잘못 썼는데 이런 틀린 법조문을 바로잡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 이게 정상인가. 바르지 않은 것은 바르게 고쳐야 하지 않나. 법은 문법 위에 있나. 아니다. 문법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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