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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14. 2024

'로서'와 '로써' (2)

국격이 말이 아니다

앞에서 '로서'를 써야 할 자리에 '로써'를 쓴 법조문 예를 보았다. 자격을 나타낼 때는 '로서'를 써야 하는데 수단, 도구를 나타내는 '로써'를 써서 그만 무슨 말인지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선명하게 뜻이 드러나야 할 법조문에서 말이다.


그런데 법조문에는 '로서'를 써야 할 자리에 '로써'를 쓴 사례만 있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로써'를 써야 하는데 '로서'를 쓴 조문이 있다. 민법 제1034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1034조(배당변제) 

①한정승인자는 제1032조제1항의 기간만료후에 상속재산으로서 그 기간 내에 신고한 채권자와 한정승인자가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하여 각 채권액의 비율로 변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선권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한정승인은 상속의 한 유형이다. 상속에는 단순승인, 한정승인 그리고 상속포기가 있다. 단순승인은 재산과 채무를 다 받겠다는 것이고 상속포기는 재산, 채무 다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상속포기는 보통 채무가 재산보다 더 많은 게 확실할 때 한다. 그럴 때는 상속을 포기하는 게 차라리 이익이다. 그럼 한정승인이란 무엇인가. 한정승인은 상속재산의 한도 안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것이다. 갚아야 할 채무가 얼마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 보통 한정승인을 한다. 채무가 상속재산보다 적은 것으로 드러나면 차액은 상속인이 갖게 되지만 채무가 더 많으면 상속재산으로 변제하고 나머지는 갚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는 그런 법리를 논하는 게 아니다. 한정승인에 관한 조항에 들어 있는 '상속재산으로서 변제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상속재산을 가지고 변제한다'는 뜻인 만큼 수단, 도구를 뜻하는 조사 '으로써'를 써서 '상속재산으로써 변제하여야 한다'라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자격을 나타내는 조사 '으로서'를 썼다. '으로서'는 도무지 문맥에 맞지 않는다. 만일 '상속재산으로 변제하여야 한다'라고 했더라도 문제가 없다. '으로'는 수단, 도구 등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속재산으로써'도 '상속재산으로'도 아닌 '상속재산으로서'라고 했다. 완전히 틀린 조사를 썼다. 


위 조문의 '상속재산으로서'는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틀렸음을 알 수 있다. 틀린 게 번히 보인다. 그런데도 바로잡지 않고 있다. 어찌하여 이런 터무니없는 오류를 방치하고 있을까. '상속재산으로서'라 써놓고 '상속재산으로써'라 읽으라는 건가. 그래도 되나. 말에 대해서 이렇게 무심해서는 안 된다. 명색이 법치국가인 나라에서 국격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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