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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19. 2024

조사를 빼먹고도 내버려두고 있다

법은 골동품도 문화유산도 아니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다.

국어는 조사가 발달한 언어이다. 주격조사는 '이/가'이고 목적격조사는 '을/를'이며 부사격조사로는 '', '게', '에서', '(으)로', '와/과' 등 많은 것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은/는', '', '' 등 여러 격으로 쓰이면서 의미가 첨가된 특수조사도 많다. 중요한 것은 문장에는 이런 조사가 반드시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조사를 넣지 않고 "한국 일제 독립했다." 하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한국 일제로부터 독립했다."라고 할 때 비로소 문장의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문장에는 조사가 반드시 씌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연하고 명백한 규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 법조문이 있다. 민법 제679조를 보자.


민법

제679조(현상광고의 철회) 

①광고에 그 지정한 행위의 완료기간을 정한 때에는 그 기간만료전에 광고를 철회하지 못한다.

②광고에 행위의 완료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행위를 완료한  있기 전에는 그 광고와 동일한 방법으로 광고를 철회할 수 있다.


먼저 현상광고란 무엇인가. 만일 신문에 "제 강아지를 찾아주는 분에게는 5만원을 드리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냈다면 이는 현상광고다. 완료기간을 정한 때란 무엇인가. "제 강아지를 올해 말까지 찾아주는 분에게는 5만원을 드리겠습니다." 했다면 '올해 말까지'가 완료기간이다. 민법 제679조 제1항은 '올해 말까지'라고 광고에 밝혔다면 그 전에는 광고를 철회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약속 위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2항은 무엇인가. '올해 말까지' 같은 완료기간을 두지 않았을 때는 "광고를 철회합니다."와 같은 광고를 내서 원래의 광고를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그 행위를 완료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 행위를 완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 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철회할 수 없다.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가. 제2항에 '완료한 자 있기 전에'를 문제 삼는 것이다. ''는 의존명사로서 의존명사는 명사와 마찬가지로 그 뒤에 조사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 그런데 조사가 없다. 


이 조가 민법이 공포된 1958년 2월 22일 관보에 어떻게 적시되어 있는지 보자. 다음과 같다.


1958년 2월 22일 관보


다른 모든 조문에 필요한 조사가 쓰였지만 '완료한  있기'의 ''에만 조사가 붙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는 단순한 실수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여기에만 조사가 없어도 되는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완료한 '에 주격조사 ''가 붙어 '완료한 자'라야 한다. 그런데 그걸 빼먹었다. 법률가들 눈에는 그깟 조사 하나 빠진 게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그랬으니 민법을 제정하던 1958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문법가의 눈에는 참 어처구니없다. 단순한 실수일 뿐인데 왜 바로잡지 않나. 


법은 골동품이 아니다. 문화유산도 아니다. 골동품이나 문화유산은 변형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해야겠지만 법은 지금 사용하는 것이다. 조사를 빠뜨린 것은 지금 국어문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법을 반듯하게 바로세워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누구 하나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국회가 그것을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다. 


참고로 형사소송법에도 같은 오류가 있음을 들어 보인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피해자등의 진술권) 

①법원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ㆍ직계친족ㆍ형제자매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피해자등”이라 한다)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피해자등을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07. 6. 1.>

1. 삭제 <2007. 6. 1.>

2. 피해자등 이미 당해 사건에 관하여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형사소송법

제387조(변론능력) 상고심에는 변호인 아니면 피고인을 위하여 변론하지 못한다.


'피해자등'은 '피해자등'라야 하고 '변호인'은 '변호인'라야 한다. 사소해 보인다고 내버려둘 게 아니다. 잘못인데 왜 방치하나. 조사는 사소하지 않다. 조사를 사소하다고 보는 게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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