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법조문은 수선해야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불편하다

by 김세중

민법 제538조는 '채권자 귀책 사유로 인한 이행 불능'이다. 말이 거창하지만 알고 보면 단순하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채무를 이행하고자 하는데 채권자의 협조를 필요로 할 경우가 있다. 그런데 채권자가 그 협조를 하지 않아서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때에는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협조하라고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다.


이 조 제1항에 '채권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당사자쌍방의 책임없는 사유로'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한 느낌이 들지 않나. '채권자', '당사자쌍방', '책임'이란 말로부터 이 조문이 뭘 의도하는지는 대체로 파악하겠지만 표현이 매끄럽지 않음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민법

제538조(채권자귀책사유로 인한 이행불능)

①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채권자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당사자쌍방 책임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도 같다.


'책임이 있다', '책임이 없다'는 앞에 '~에게'가 와야 자연스럽다. 즉 '채권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당사자 쌍방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라고 했더라면 한눈에 뜻이 선명하게 머리에 들어왔겠지만 '채권자 책임있는 사유로', '당사자쌍방 책임없는 사유로'라 되어 있어 알쏭달쏭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채권자의 책임있는 사유로'가 무슨 뜻인가. 이게 말이 되는가. 민법을 제정할 때 관보에는 다음과 같이 고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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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문에서 '채권자의 책임'이란 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채권자의 책임인 사유', '채권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라고 했어야 했다. 그렇게만 했더라도 문법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채권자의 책임 있는 사유'라고 했기 때문에 도무지 문법에 맞지 않고 그래서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가 없다. 뭉뚱그려서 '채권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인가 보다' 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명료, 명쾌해야 할 법조문이 어찌 이 모양인가.


우리는 '잘못이 있다', '잘못이 없다'라는 말을 할 때 '~에게 잘못이 있다', '~에게 잘못이 없다'라고 한다. 그것처럼 '책임이 있다', '책임이 없다'라는 말을 할 때도 '~에게 책임이 있다', '~에게 책임이 없다'라 해야 한눈에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조사를 바로 쓰지 않으니 뭔가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문맥에 맞는 조사를 쓰면 문장의 뜻이 선명하게 파악되지만 조사를 잘못 쓰면 뭔가 께름칙한 것이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으면 편안하지만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옷을 입으면 불편하지 않나. 말도 다르지 않다. 낡고 틀린 법조문은 수선해야 한다. 마냥 끌어안고 있을 게 아니다. 새로운 세대에게도 이런 괴상하고 고약한 조문을 물려줘야 하나. 70년 가깝게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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