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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문장을 2020년대에도 쓰고 있다

주어에 주격조사 아닌 관형격조사를 쓰는 건 국어 왜곡

by 김세중

민법 제914조 "자는 친권자 지정한 장소에 거주하여야 한다."는 간단한 문장이지만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 아니어 보인다. "자는 친권자 지정한 장소에 거주하여야 한다."였다면 얼마나 친근하게 와닿겠는가. 그렇지 않고 "자는 친권자 지정한 장소에 거주하여야 한다."라 되어 있어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주어에 주격조사를 쓰지 않고 엉뚱하게 관형격조사를 씀으로써 정상적인 국어 문장으로 보이지 않는 예는 형법, 형사소송법에도 있다. 다음 조문을 보자.


형법

제187조(기차 등의 전복 등) 사람 현존하는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를 전복, 매몰, 추락 또는 파괴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사소송법

제252조(시효의 기산점) ①시효는 범죄행위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

②공범에는 최종행위 종료한 때로부터 전공범에 대한 시효기간을 기산한다.


형법 제187조의 '사람 현존하는 기차'는 '사람 현존하는 기차'였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물론 '현존하는'도 '타고 있는'이었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움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왜 굳이 '현존하는'이라고 해야 하나. 법은 국민이 쉽게 이해하면 안 되나. 뭔가 감추고 숨겨야 할 필요가 있나.


형사소송법 제252조에 나오는 '행위 종료한 때'도 마찬가지다. '행위 종료한 때'라고 할 때 한눈에 뜻을 파악할 수 있다. 주어에는 주격조사가 붙어야지 엉뚱하게 관형격조사가 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어 왜곡이다. 법조문이 국어를 왜곡하고 있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1950년대에 잘못 만들어진 법조문을 무려 70년이 지난 2020년대에까지 그대로 쓰고 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언제 바로잡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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