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Aug 23. 2024

알쏭달쏭한 법조문

시제를 잘못 썼기 때문에 그렇다

전세권은 물권의 한 종류이다. 민법은 전세를 얻은 집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세를 놓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것이 전전세다. 그런데 전전세를 했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전세를 놓은 후에 집이 망가지거나 하는 손해가 발생했다 치자. 그 손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 소유자가 아니라 전전세를 놓은 사람이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민법 제308조는 규정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민법

제308조(전전세 등의 경우의 책임) 전세권의 목적물을 전전세 또는 임대한 경우에는 전세권자는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그 책임을 부담한다.


문제는 이 조문의 표현이다.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는 (불가향력으로 인한) 손해"에서 '아니하였으면'과 '면할 수 있는'은 서로 맞지 않는다. '아니하였으면'은 가정을 하면서 과거시제를 썼고 '면할 수 있는'은 현재시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는 손해"는 어색하게 느껴지고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문장의 시제를 잘못 썼다.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었을 불가향력으로 인한 손해"가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이다.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면 면할 수 있었을 불가향력으로 인한 손해"라고 해도 된다. 굳이 '아니하으면'이라고 할 것도 없다.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면 면할 수 있는 불가향력으로 인한 손해"라고 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민법 제308조는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이라는 최악의 표현을 쓰고 말았다.


똑같은 오류가 민법 제336조에도 있다.


제336조(전질권) 질권자는 그 권리의 범위내에서 자기의 책임으로 질물을 전질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전질을 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도 책임을 부담한다.


여기서도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이 아니라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었을" 또는 "아니하면 면할 수 "이라야 한다.


한편 민법 제410조 제2항에도 유사한 오류가 있다. 제410조는 불가분채권에 관한 것으로 불가분채권이란 채권자가 여러 명인데 그 채권을 나눌 수 없고 공동으로 채권을 갖는 경우를 가리킨다. 여기서 제2항의 표현에 문제가 있다. 


제410조(1인의 채권자에 생긴 사항의 효력) 

①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모든 채권자에게 효력이 있는 사항을 제외하고는 불가분채권자중 1인의 행위나 1인에 관한 사항은 다른 채권자에게 효력이 없다.

②불가분채권자 중의 1인과 채무자간에 경개면제있는 경우에 채무전부의 이행을 받은 다른 채권자는 그 1인이 권리를 잃지 아니하였으면 그에게 분급할 이익을 채무자에게 상환하여야 한다.


제2항에 "채무 전부의 이행을 받은 다른 채권자는 그 1인이 권리를 잃지 아니하였으면 그에게 분급할 이익을 채무자에게 상환하여야 한다."라 되어 있는데 '아니하으면'은 과거시제인데 '분급할'에는 과거의 뜻이 없다. 그래서 서로 안 맞는다. "아니하였으면 그에게 분급"이 아니라 "아니하였으면 그에게 분급했을"이라야 옳았다. 관계 자체가 복잡해서 안 그래도 어려운 법조문이 문법마저 어겨서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최소한 문법에 맞게는 써야 한다. 문법에 맞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민법은 반듯하게 개정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색함이 법조문의 특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