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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27. 2024

참 이상한 표현

'정하다'를 바로 쓸 수 없을까

민법에 버금갈 정도로 방대한 상법에는 낯설고 이상한 표현이 곳곳에 들어 있다. "~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이 그것이다. '정하다'라는 말을 이렇게도 쓰나? 법률이나 규칙, 정관으로 무언가를 정할 때에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일반적인가. 먼저 구체적인 조문을 가지고 살펴보자. 상법 제219조는 다음과 같다.


상법

제219조(사원사망 시 권리승계의 통지) 

①정관으로 사원이 사망한 경우에 그 상속인이 회사에 대한 피상속인의 권리의무를 승계하여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 상속인은 상속의 개시를 안 날로부터 3월내에 회사에 대하여 승계 또는 포기의 통지를 발송하여야 한다.

②상속인이 전항의 통지 없이 3월을 경과한 때에는 사원이 될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


상법 제219조는 합명회사에서 사원의 퇴사에 관한 규정 중 하나이다. 합명회사에서 사원이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사망한 사람의 권리의무를 승계하는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관에 되어 있을 때 상속인은 사원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사를 3개월 안에 회사에 통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3개월 안에 통지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원이 될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정관에 피상속인이 상속인의 사원으로서의 지위를 승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더라도 승계하겠다는 의사를 회사에 3개월 안에 통지해야 한다는 게 제219조의 내용이다.


문제는 제1항에 있는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이 정상적인 한국어 표현이냐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는 짐작할 수 있겠지만 도저히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한 때에는"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한 때에는"이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표현 아닌가. 그에 반해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은 뭔가 어색하고 낯설어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지 않는가.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은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한 때에는"으로 고쳐야 마땅하다.


'정하다'를 이렇게 이상하게 쓴 표현은 제219조 외에도 상법의 여러 조에 들어 있다. 다음 조문들이 그러하다.


상법

제346조(주식의 전환에 관한 종류주식)

② 회사가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정관에 일정한 사유가 발생할 때 회사가 주주의 인수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정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전환의 사유, 전환의 조건, 전환의 기간, 전환으로 인하여 발행할 주식의 수와 내용을 정하여야 한다.


제368조의4(전자적 방법에 의한 의결권의 행사) ①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주주가 총회에 출석하지 아니하고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정할 수 있다.


제462조의3(중간배당) ①년 1회의 결산기를 정한 회사는 영업년도중 1회에 한하여 이사회의 결의로 일정한 날을 정하여 그 날의 주주에 대하여 이익을 배당(이하 이 條에서 “中間配當”이라 한다)할 수 있음을 정관으로 정할 수 있다. <개정 2011. 4. 14.>


제462조의4(현물배당) ① 회사는 정관으로 금전 외의 재산으로 배당을 할 수 있음을 정할 수 있다.


제484조(사채관리회사의 권한) 

④ 사채관리회사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사채에 관한 채권을 변제받거나 채권의 실현을 보전하기 위한 행위는 제외한다)를 하는 경우에는 사채권자집회의 결의에 의하여야 한다. 다만, 사채를 발행하는 회사는 제2호의 행위를 사채관리회사가 사채권자집회결의에 의하지 아니하고 할 수 있음을 정할 수 있다.


6법의 하나인 상법은 1962년에 제정되었다. 60년 이상 지났다. 1960년대초에 만들어진 낯설고 어색한 표현이 아직도 그대로다.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 그래서 편하게 읽히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 법조문은 문법에 맞아야 한다. 불편을 참고 지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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