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다'를 바로 쓸 수 없을까
민법에 버금갈 정도로 방대한 상법에는 낯설고 이상한 표현이 곳곳에 들어 있다. "~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이 그것이다. '정하다'라는 말을 이렇게도 쓰나? 법률이나 규칙, 정관으로 무언가를 정할 때에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일반적인가. 먼저 구체적인 조문을 가지고 살펴보자. 상법 제219조는 다음과 같다.
상법 제219조는 합명회사에서 사원의 퇴사에 관한 규정 중 하나이다. 합명회사에서 사원이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사망한 사람의 권리의무를 승계하는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관에 되어 있을 때 상속인은 사원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사를 3개월 안에 회사에 통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3개월 안에 통지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원이 될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정관에 피상속인이 상속인의 사원으로서의 지위를 승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더라도 승계하겠다는 의사를 회사에 3개월 안에 통지해야 한다는 게 제219조의 내용이다.
문제는 제1항에 있는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이 정상적인 한국어 표현이냐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는 짐작할 수 있겠지만 도저히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한 때에는"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한 때에는"이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표현 아닌가. 그에 반해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은 뭔가 어색하고 낯설어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지 않는가. "사원이 될 수 있음을 정한 때에는"은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정한 때에는"으로 고쳐야 마땅하다.
'정하다'를 이렇게 이상하게 쓴 표현은 제219조 외에도 상법의 여러 조에 들어 있다. 다음 조문들이 그러하다.
6법의 하나인 상법은 1962년에 제정되었다. 60년 이상 지났다. 1960년대초에 만들어진 낯설고 어색한 표현이 아직도 그대로다.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 그래서 편하게 읽히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 법조문은 문법에 맞아야 한다. 불편을 참고 지낼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