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남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남에게서 돈을 빌리기도 한다. 그럴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돈을 빌릴 때에는 증서를 쓴다. 차용증서에는 얼마를 빌리며 언제까지 갚겠다는 게 들어가 있다. 갚는 기일을 지키지 못할 때는 얼마의 이자를 물겠다는 것도 포함되는 게 보통이다. 민법 제397조는 이에 관한 규정이다.
체무자가 금전 채무를 약속한 기한 내에 갚지 못할 때는 채권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제1항은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하되,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고 되어 있다. 단 그 이율은 법령의 제한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민법의 법정이율은 5%이고 이제제한법에서 규정한 25%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한 이율이 있다면 그것에 따른다는 것이다.)
제2항은 금전채무 불이행에 대해서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않고, 채무자는 과실이 없다고 항변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금전 채무를 질 때에는 보통 차용증을 쓴다. 법적 용어로는 금전소비대차계약서이다. 그것만 있으면 되지 달리 채권자가 손해의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채무자는 어떤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했다면 그 자체가 과실이지 과실이 없다고 항변할 수 없다. 문제는 제2항에 들어 있는 이상한 표현이다.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가 어떤가. 누구든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법조문이니 여러 번 읽게 되고 여러 번 읽으면서 무엇을 뜻하는지 감을 잡은 뒤에는 그만 넘어가고 만다. 법조문에 문제가 있음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채무자는 과실없다고 항변하지 못한다."와 비교해 보자.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후자가 사람들이 보통 쓰는 말이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는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 아니다. "채무자는 과실없다고 항변하지 못한다."로 고쳐야 한다. 왜 법조문은 어색해야 하나. 왜 법조문은 어색한 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게 비정상이어야 하나.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법조문을 정상적 표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마냥 미루고 있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