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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27. 2024

왠지 이상한 표현

과실 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남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남에게서 돈을 빌리기도 한다. 그럴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돈을 빌릴 때에는 증서를 쓴다. 차용증서에는 얼마를 빌리며 언제까지 갚겠다는 게 들어가 있다. 갚는 기일을 지키지 못할 때는 얼마의 이자를 물겠다는 것도 포함되는 게 보통이다. 민법 제397조는 이에 관한 규정이다. 


민법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체무자가 금전 채무를 약속한 기한 내에 갚지 못할 때는 채권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제1항은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하되,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고 되어 있다. 단 그 이율은 법령의 제한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민법의 법정이율은 5%이고 이제제한법에서 규정한 25%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한 이율이 있다면 그것에 따른다는 것이다.)


제2항은 금전채무 불이행에 대해서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않고, 채무자는 과실이 없다고 항변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금전 채무를 질 때에는 보통 차용증을 쓴다. 법적 용어로는 금전소비대차계약서이다. 그것만 있으면 되지 달리 채권자가 손해의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채무자는 어떤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했다면 그 자체가 과실이지 과실이 없다고 항변할 수 없다. 문제는 제2항에 들어 있는 이상한 표현이다.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가 어떤가. 누구든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법조문이니 여러 번 읽게 되고 여러 번 읽으면서 무엇을 뜻하는지 감을 잡은 뒤에는 그만 넘어가고 만다. 법조문에 문제가 있음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채무자는 과실없다고 항변하지 못한다."와 비교해 보자.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후자가 사람들이 보통 쓰는 말이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는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 아니다. "채무자는 과실없다고 항변하지 못한다."로 고쳐야 한다. 왜 법조문은 어색해야 하나. 왜 법조문은 어색한 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게 비정상이어야 하나.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법조문을 정상적 표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마냥 미루고 있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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