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를 쓸 자리에 '아니다'를 쓴 예도 있다
민법 제31조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면 성립하지 못한다."는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못한다."여야 하는데 엉뚱하게 '아니면'을 써서 이상한 문장이 되고 말았다. 같은 오류가 민법의 다른 조에도 나타난다. 민법 제337조 제1항과 제349조 제1항에 그런 오류가 있다.
'채무자가 이를 승낙하지 않으면'이라 해야 할 것을 '채무자가 이를 승낙함이 아니면'이라 했다. 왜 멀쩡한 말을 놓아두고 이상한 표현을 썼나? 그렇지 않아도 관계가 복잡해 조문의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표현까지 아리송하게 돼 있으니 조문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오류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한편 민법 제708조에도 '아니다'를 쓸 자리가 아닌데 '아니다'를 쓴 예가 있다. 민법 제708조는 다음과 같다.
제708조는 조합에 관한 조인데 조합원의 사임과 해임의 조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조합이란 2인 이상이 출자해서 공동으로 사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제708조는 업무집행자인 조합원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사임'할 수 있고, 다른 조합원의 뜻이 모두 일치할 때만 '해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가 있으면 조합원을 해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조합원의 일치가 아니면'은 표현이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다'는 주어가 있어야 함은 물론 보어까지 갖추어야 하는 형용사다. 예컨대 "그는 아니다."라는 문장은 말이 안 된다. 주어만 있고 보어가 없기 때문이다. 보어를 갖춘 "그는 부자가 아니다.", "그는 범인이 아니다.", "그는 모범생이 아니다." 등과 같이 '부자가', '범인이', '모범생이' 같은 보어가 있어야만 말이 된다. 그런데 '다른 조합원의 일치가 아니면'은 거꾸로 보어만 있고 주어가 없다. 그래서 뭐가 다른 조합원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을 쓸 자리가 아닌데 '아니면'을 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
그럼 어떻게 썼어야 했나. '다른 조합원의 일치가 없으면'이라고 해야 했다. 혹은 '다른 조합원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으면'이라고 해도 된다. 이도 저도 아닌 '다른 조합원의 일치가 아니면'이라고 하는 바람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되고 말았다. '아니다'를 쓸 자리가 아닌데 '아니다'를 썼다. 법조문에 이런 비문이 있는데도 방치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말이 안 되는 법조문이 있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