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권위에 눌려 문법을 어긴 줄도 모르고 지내왔다
헌법은 모든 법 위에 있다. 헌법은 일반 법률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법률은 국회에서 만들지만 헌법은 국회 통과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비로소 헌법은 개정된다. 그만큼 헌법은 권위 있고 소중하다. 그런 헌법에는 털끝만큼도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워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헌법은 과연 완벽한가. 언어 면에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제107조를 보자.
헌법 제107조의 제1항과 제2항에 각각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가 있다. 여기서 '위반되는 여부'에 문제가 없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위반되는'은 어간 '위반되-'에 어미 '-는'이 붙은 말이다. 한국어의 동사, 형용사는 어간만 쓰이는 법이 없다. 반드시 어미가 붙어야 한다. 그리고 문맥에 맞는 어미가 쓰여야 한다. 따라서 맞는 어미가 쓰였는지가 문제다.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에서 어미 '-는'이 이 문맥에 맞는 어미인가.
먼저 '여부'라는 말에 대해서 살펴보자. '여부'는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이라는 뜻의 명사다. '생사 여부', '성공 여부', '도착 여부' 등과 같이 '여부' 앞에 명사가 오기도 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여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여부', '도착했는지 여부' 등과 같이 '여부' 앞에 동사가 오기도 한다. 동사가 올 때 어떤 어미가 쓰였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여부'에서 동사 '살았는지'는 '살-'이라는 어간에 어미 '-었-', '-는지'가 붙었다. 만일 어미 '-는지'가 아니라 '-는'을 써서 '살았는 여부'라고 하면 어떤가? 누구든 '살았는 여부'가 말이 안 됨을 알 것이다.
헌법 제107조의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는 '살았는 여부'와 같이 틀린 말이다. 다만 우리는 헌법의 권위에 눌려 틀렸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할 뿐이다. '살았는 여부'는 단박에 틀린 말인 줄 알면서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게 과연 옳고 당연할까. 우린 법의 권위에 너무 억눌려 살았다. 법이 문법을 어겨도 문법을 어긴 줄 모르고 지내왔다. 어미는 사소한가. 그렇지 않다. 적재적소에 맞게 어미를 써야 한다. 다음 헌법 개정 때는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를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