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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4. 2024

'하여금'을 제대로 썼나

쓰일 자리가 아닌데 쓰였다

국어에 '하여금'이란 말이 요긴하게 쓰인다. '하여금' 앞에는 '~A()'가 나오고 뒤에는 '~게 하' 또는 '~도록 하'가 나온다. 일테면 '과장으로 하여금 진급을 포기하게 하', '집행부 하여금 결의안을 상정하도록 했'가 '하여금'이 제대로 사용된 예다. '하여금'은 누구에게 무엇을 시킨다는 뜻을 나타낼 때 쓰인다. 중요한 것은 '하여금'이 쓰였다면 뒤에 반드시 '~게 하다'나 '~도록 하다'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다' 대신에 '만들다'가 와도 좋다. 이것은 예외가 없다. 그런데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법조문이 있다. 상법 제393조 제3항은 다음과 같다.


상법

제393조(이사회의 권한)

③이사는 대표이사로 하여금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하여금'이 쓰였지만 뒤에는 '보고하게 할'이 오지 않고 '보고'이 왔다. 문법을 어겼다. 이는 무엇을 말하나? 앞에 '하여금'이 잘못 쓰였거나 뒤가 '보고하게 할'이어야 하는데 '보고'로 잘못 쓰였거나 둘 중 하나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을까. 답을 얻기 위해서는 전체 문장을 놓고 따져봐야 한다. 제3항은 '요구할 수 있다'로 끝나는데 '요구할'은 누가 누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누가'에 해당하는 주어는 이사이다. 그럼 누구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인가? 


대표이사이거나 이사회이다. 만일 대표이사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써야 옳다.


(1)

③이사는 대표이사에게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만일 이사회에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써야 옳다.


(2) 

③이사는 이사회 대표이사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입법 의도는 (1)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상법 제393조 제3항과 (1)의 차이는 무엇인가. 제393조 제3항은 '대표이사로 하여금'이고 (1)은 '대표이사에게'이다. 요컨대 상법 제393조 제3항에서 '하여금'은 쓰일 자리가 아닌데 쓰였다. 


상법 제393조 제3항은 2001년 7월 24일에 신설된 조항이다. 1962년 상법 제정 때 만들어지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조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잘못된 문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은 법조인들끼리만 알면 그만인가. 법조인들은 과연 이런 문장을 잘 이해할 수 있나. 한국인이면 누구든 문장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국어문법에 맞게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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