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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03. 2024

의도에 끼워 맞추는 독해

틀려도 틀린 줄 모른다

오늘 한 중앙일간지 칼럼은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의 식습관에 대해 다뤘다. 그는 94세인데 매일 콜라와 햄버거, 사탕을 즐겨 먹는데도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다고 했다. 흔히들 콜라며 햄버거 같은 음식이 몸에 해롭다고 하지만 실은 그것보다 건강 유지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싶었다. 



그런데 이 칼럼 마지막 문단의 끝 문장이 뜨악하다. 긴 글의 한 줄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보기엔 무척 엉뚱하다. "나이 들수록 성장기 아이로 돌아가, 많이 먹고,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가 싶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건 무슨 말이냐. 긍정의 "살아야 한다 싶다"가 아니라 의문의 "살아야 는가 싶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뜻 아닌가. 다음 (1), (2), (3)을 비교해 보자. 


(1) 나이 들수록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가 싶다

(2) 나이 들수록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3) 나이 들수록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2)와 (3)은 뜻이 같고 (1)과 뜻이 반대다. 칼럼을 쓴 이는 (2), (3)의 뜻으로 (1)을 말하지 않았나. 짧고 간명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게 지나쳐서 반대의 뜻이 되고 말지 않았나. 


이 예는 틀리게 말해도 사람들은 액면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필자가 의도했던 뜻을 파악하고 넘어감을 잘 보여준다. 필자처럼 말에 예민한 사람만 결함이 눈에 띌 뿐이다. 직업 탓이려니 한다. 


요컨대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가 싶다"는 발화 실수다.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또는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 해야 한다. 입은 비뚤어도 말은 바로 하라 했다. 말을 바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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