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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24. 2024

'흡식'을 아십니까

일본 법의 무비판적 수용 이제 고쳐야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상당 기간 일제식민지 시기의 법률이 그대로 쓰였다. 민법에 해당하는 조선민사령은 일제강점기에 일제당국이 사용하던 것인데 1960년 1월 1일부터 우리 민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쓰였다. 1958년 2월 22일에야 공포된 민법도 실은 일본 민법에 크게 기대어 만들어졌다. 


형법은 민법보다 빨리 1953년에 제정되었다. 그런데 제정된 형법은 일본 형법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일본 형법에 크게 의존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7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그 증거가 형법 제199조, 제200조, 제201조에 있다. 이들 조에 '吸食'이란 말이 들어 있다. 그중 한 조 형법 제201조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형법

제201조(아편흡식 등, 동장소제공) 

①아편을 흡식하거나 몰핀을 주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아편흡식 또는 몰핀 주사의 장소를 제공하여 이익을 취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201조는 공식적으로는 한자로 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第201條(阿片吸食 等, 同場所提供) 

①阿片을 吸食하거나 몰핀을 注射한 者는 5年 以下의 懲役에 處한다.

②阿片吸食 또는 몰핀 注射의 場所를 提供하여 利益을 取한 者도 前項의 刑과 같다.


그런데 일본 형법의 아편에 관한 조항은 어떤지 보자. 제137조부터 140조까지인데 다음과 같다.


(あへん煙吸食器具輸入等)

第百三十七条あへん煙を吸食する器具を輸入し、製造し、販売し、又は販売の目的で所持した者は、三月以上五年以下の懲役に処する。

(税関職員によるあへん煙輸入等)

第百三十八条税関職員が、あへん煙又はあへん煙を吸食するための器具を輸入し、又はこれらの輸入を許したときは、一年以上十年以下の懲役に処する。

(あへん煙吸食及び場所提供)

第百三十九条あへん煙を吸食した者は、三年以下の懲役に処する。

2あへん煙の吸食のため建物又は室を提供して利益を図った者は、六月以上七年以下の懲役に処する。

(あへん煙等所持)

第百四十条あへん煙又はあへん煙を吸食するための器具を所持した者は、一年以下の懲役に処する。


각 조마다 한결같이 '吸食'이란 말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형법의 '吸食'이 일본 형법에서 가져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일상생활에서 '흡식'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국어사전에도 '흡식(吸食)'이란 말은 없다. '흡식'의 뜻을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吸食'이란 말은 일본어에서조차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웬만한 일본어사전에서 '吸食'이란 말을 찾아보아도 그런 말은 없다고 나온다. 대신에 일본어에는 '기체나 액체를 빨아들이다'라는 뜻의 말로 '吸入'이 널리 쓰인다. '吸入'은 어떤 일본어사전에도 다 있다. 왜 일본 형법에서 '吸入' 대신 잘 쓰이지 않는'吸食'이란 말을 썼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우리 형법에는 국어에는 없고 일본어에서도 좀체 쓰이지 않는 '吸食'이 들어 있다. 일본 형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우리말에도 '흡입(吸入)'이란 말이 있다. '기체나 액체 따위를 빨아들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형법의 아편에 관한 조항에 '흡식(吸食)' 대신 '흡입(吸入)'을 써도 무방하리라 여겨진다.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법조문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써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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