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개정안이 국회의 무관심으로 폐기됐다
민법 제226조와 제228조에 '여수'라는 말이 있다. 토지 소유권 관련 조항에 나온다. 민법이 제정될 때는 한자로 씌었으므로 餘水라 적혔다. 그래서 뜻을 짐작하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본적으로 법전이 한글로 제공된다. 그래서 민법 제226조와 제228조는 다음과 같다.
제226조는 무엇을 규정하고 있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인데 자기 땅 위로 흐르는 물이 남으면 그 물을 낮은 지대에 있는 남의 토지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물을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물이 넘쳐서 자기 땅이 침수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을 흘려보냈는데 이로 인해 낮은 지대에 손해를 끼친다면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
뜻은 그러한데 여기서 '여수'가 무슨 뜻인지 사람들이 잘 알 수 있을까. 대체 한국사람이 '여수'라는 말을 쓰기는 하나.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餘水'는 도대체 민법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을까. 충분히 예상되듯이 일본 민법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 민법의 해당 조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어의 '余水'가 바로 '餘水'이다. 餘의 약자가 余로, 일본에서는 餘 대신 余를 쓴다. 이 '여수'를 알기 쉬운 말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법무부가 2019년 국회에 제출한 민법개정안은 제226조와 제228조가 매우 알기 쉽게 바뀌었다. 개정안 제226조와 제228조는 다음과 같았다.
현행 민법과 이 개정안을 비교해 보면 누구나 알기 쉽게 조문이 평이하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고지소유자'를 '높은 곳에 있는 토지의 소유자'로, '침수지'를 '물에 잠긴 토지'로 바꾸었으며 '소통하기 위하여'는 '흘려보내기 위하여'로 바꾸었다. 특히 제226조의 '여수'는 '남은 물'로, 제228조의 '여수'는 '남는 물'로 바꾼 것은 인상적이다. 같은 '여수'라도 본인이 쓰고 남은 물은 '남은 물'로, 남이 쓰고 남은 물은 '남는 물'이라 한 것인데 미묘한 어감 차이를 문맥에 맞게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훌륭한 만봅 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폐기되고 말았다. 국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도 낡디낡은 민법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도무지 법조문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