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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10. 2024

'강도하다'는 국어가 아니다

형법에서 '강도할 목적으로'를 들어내야

    형법의 제38장은 절도강도의 죄에 대해 규정한다. 제329조부터 제346조까지이다. 이 중에서 형법 제333조는 강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33조(강도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의 재물을 강취하거나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여기에 '강취하거나'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1953년에 형법이 제정될 때는 한자로 적혔을 때이므로 '强取하거나'였다. '강취하다'는 '남의 물건이나 권리를 강제로 빼앗다'라는 뜻이다. '강취하다'보다는 '강제로 빼앗다'가 훨씬 알기 쉬운 말이지만 '강취하다'가 법조문에 사용된 것은 시대적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법률가들은 널리 쓰이는 알기 쉬운 말을 법조문에 쓰기보다는 그들에게 익숙한 한자어를 쓰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에서 '강취하다'라는 말이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국어사전에 있기는 하지만 '강취하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강제로 빼앗다'라고 하면 바로 통한다. '강제로 빼앗다'가 아니라 '강취하다'가법조문에 쓰인 것은 1950년대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한국어 같지 않고 외국어를 대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국어사전에 '강취하다'가 올라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제343조를 보면 더는 참기 어려운 표현이 등장한다. '강도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의 '강도할'이 그것이다. '강도하다'는 국어사전에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누구도 쓰지 않는 말이다. 유령이나 쓰는 말일까. 오로지 형법 제343조에만 나온다. 형법 제343조는 다음과 같다.


제343조(예비, 음모) 강도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최소한 말이 되게 하려면 '강도질할 목적으로'라 하든지 '강취할 목적으로'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강도할 목적으로'이다. 문제는 '강도하다'라는 말이 국어에 없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대에 '강도하다'가 동사로서 쓰였는지는 의문이다. 아마 안 쓰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지금 '강도하다'가 안 쓰이는데 1950년대라고 '강도하다'가 쓰였을까. 


'강도하다'란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953년에 제정된 형법에는 '강도할 목적으로'라는 말이 형법 제343조에 들어갔고 지금도 그대로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강도하다'라는 말이 없다면 '강도할'이라는 말도 쓰일 수 없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강취할 목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더 나은 것은 '강도질할 목적으로'이다. 국민이 알아먹어야 할 거 아닌가. '강도할 목적으로'는 억지다. 형법은 개정돼야 한다. 상식에 맞아야 하지 않나. '강도할 목적으로'를 형법에서 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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