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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11. 2024

'간첩하다'도 국어에 없는 말이다

형법 제98조는 간첩에 대한 처벌 규정이다. 간첩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니 매우 무거운 죄이다. 다음과 같다.


형법

제98조(간첩) ①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런데 형법 제98조 제1항의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는 무척 뜨악한 느낌을 준다. '간첩하거나' 때문이다. 국어에 '간첩'이라는 명사는 널리 쓰인다. 초등학생도 아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간첩하다'라는 동사는 없다. 국어사전에도 물론 올라 있지 않다. 그럼에도 형법 제98조에는 '간첩하거나'가 나오니 어인 일인가. 


'간첩하거나'는 형법 제343조의 '강도할 목적으로'의 '강도할'만큼이나 어색한 느낌을 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억지스럽다. '강도할 목적으로'는 자꾸 입에 배면 '강도할'이 동사로서 쓰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간첩하거나'는 도무지 그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간첩 활동을 하거나' 또는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으로 활동하거나'라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아무런 의문이 느껴지지 않고 간명하게 이해된다.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간첩하거나'와 같이 말이 안 되는 표현은 형법 제111조에도 있다. 제111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제111조(외국에 대한 사전) ①외국에 대하여 사전 자는 1년 이상의 유기금고에 처한다.


형법 제111조 제목 '외국에 대한 사전'의 '사전'은 私戰이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어 외국에 대해 전쟁을 하는 것이 사전이다. 과연 제111조의 적용을 받아 처벌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만일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조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사전(私戰)'이라는 명사도 좀체로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사전하다'는 더더욱 생소하기 그지없다. 국어사전에도 물론 '사전하다'는 없다. 형법 제111조 제1항의 '사전한'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다. 국어에 그런 말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사전한'이 아니라 '사전을 한'이나 '사전을 실행한'이라 해야 한다. 


'강도할', '간첩하거나', '사전한'과 같은 형법 조문의 표현은 국어에 없는 말들이다. 억지가 도를 넘었다. 이런 말이 형법 조문에 들어 있음은 딱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법조문에 국어에 없는 말이 쓰이고 있다니 말이 되나. 개선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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